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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행복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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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행복주택

입력
2013.06.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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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 처음 산 곳이 남산 기슭 후암동이었다. 당대의 부유층과 빈민층이 골목 하나 사이로 나란히 살았다. 목조주택 한 켠에서 셋방살이 하는 아이들과 정원과 연못, 때로는 계곡과 동산까지 있는 저택의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녔다. 고아원 아이들까지 출신성분은 천양지차였다. 그 아이들이 같이 뛰어 놀고, 불량식품을 나눠 먹고, 집으로 몰려 다녔다. 양옥집 판잣집 할 것 없이 엄마들은 아들딸 친구에게 언제나 따뜻했다.

▲ 30년 뒤 강남 수서에 살 때였다. 밖에서는 '교육특구'라고 부러워한 지역이지만, 길 하나 사이로 집값이 달랐다. 알고 보니 배정 학교가 달랐고, 학교 선호도가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같이 다니느냐 여부로 갈렸다. 하기야 행정의 차별부터 노골적이었다. 분당선 연장 공사 막바지에 임대아파트 밀집 지역에 역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묵살한 반면 인근 개포동엔 600~700㎙ 간격으로 3개 역을 두었다. 예상이용률 등 합리적 고려와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다.

▲ 서울의 학교 배정과 아파트 값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그 주된 잣대가 '계층 동질성'이라는 말은 헛소리가 아니다. 임대아파트는 물론이고, '국민주택 규모' 이하 평형이 적고, 외부인이 쉽사리 드나들기 어려울수록 값이 비싸다. '시어머니가 찾기 어렵도록' 아파트 이름이 자꾸 복잡한 외국어로 바뀐다는 농담에서는 시부모마저 외부인으로 간주된다. '행복주택'에 대한 주민 반대에서 10년 전 부동산 거품 때와 전연 다르지 않은 배타적 욕구를 본다.

▲ '뉴타운' 반대가 건강한 도시구조에 대한 깨달음에서 나왔다는 생각도 흔들린다. 재개발은 도시에 불가결한 허드렛일과 육체노동 공급자를 바깥으로 밀어낸다. 서울이 그 한계에 이르렀고, 그 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다양한 계층이 섞여 사는 삶의 가치를 재발견했을 만하다고 여겼다. 그것이 그저 다투어야 할 재개발 이익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면 얼마나 불편한 진실인가. 아이들이 끼리끼리만 따로 섬처럼 살기 바라는 사람들에게 공생의 행복은 너무 멀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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