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62) 전 국가정보원장의 신병처리를 두고 검찰과 법무부가 갈등(본보 3일자 10면 보도)을 빚는 이유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을 놓고 양측의 견해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공안검사와 특수검사 사이의 의견대립 및 정치적 성격이 농후한 사건의 특성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점도 갈등을 표출시킨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부장검사)은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 직전 정치 관련 게시글과 찬반 댓글 수천 개를 올린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원 전 원장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수사팀은 국정원법 위반은 물론 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적용할 경우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지난 27일 대검을 경유해 법무부에 이 같은 방침을 보고했다. 선거법 제86조는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수사팀은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는 악습을 끊으려면 강도 높은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도 제시하고 있다. 일선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인 채동욱 검찰총장도 수사팀 의견을 대체로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법무부가 대검 보고를 받고도 1주일 동안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서 뒷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사팀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딴지를 걸고 있다"는 의심은 물론 청와대의 외압이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실제로 청와대는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경우 지난 대선이 불공정했다는 논란이 제기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고 있지만 '원 전 원장을 구속하는 것은 좋은데 왜 하필 선거법을 적용하느냐'는 불만이다.
공안통인 황교안 장관과 특수통인 채동욱 총장의 이력까지 더해져 이번 사태를 특수통과 공안통의 갈등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특수부 검사들은 핵심 증거가 확보되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기소하는 데 거침이 없는 반면 정치선거 등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건을 주로 처리해 온 공안부 검사들은 확실히 입증이 가능한 혐의 위주로 기소해야 한다는 스타일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검과 법무부의 공안라인은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활동을 원 전 원장이 지시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정밀한 법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양측이 팽팽한 힘 대결을 하는 가운데 황 장관의 외압설이 불거져 나와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날지가 관심이다. 법무부는 이날 "검찰로부터 보고를 받아오고 있지만 이는 중요사건 수사에서의 통상적 보고로 장관의 지휘권 행사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향후 사건 처리에 있어서 황 장관의 입지가 좁아진 것은 사실이다. 당장 야당과 시민단체가 "법무부가 정권 눈치를 보고 있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원 전 원장이 건설업체 대표에게서 명품과 순금을 받는 등 개인비리 의혹까지 불거진 점도 원 전 원장의 신병처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법무부가 수사팀을 외압설의 진원지로 꼽고 있는 점은 채 총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사건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의 공소시효는 대선 6개월 후인 이달 19일인 만큼, 구속 기간(1회 10일에 1차례 연장 가능)을 감안하면 이번 주중에는 영장청구 여부에 대한 결론이 나야 한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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