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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6월 4일] 6ㆍ25 바다의 전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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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6월 4일] 6ㆍ25 바다의 전우들

입력
2013.06.0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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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 당시의 대한해협해전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전체를 새까맣게 칠하고 선명(船名)도 국기도 없이 남하하는 괴선박을 우리 백두산함이 발견한 시각은 25일 밤 9시30분. 교전 끝에 괴선박을 침몰시킨 시각은 26일 새벽 1시38분. 북한군 특수요원 600~700명을 싣고 부산을 점령하기 위해 25일 새벽 38선을 넘은 괴선박의 정체는 나중에야 확인됐다. 북한 인민군 부사령관 김일 중장으로부터 "인민군 남진에 호응하여 부산에 돌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 백두산함은 해군의 염원으로 탄생했다. 장병들이 월급에서 5~10%씩 갹출하고, 부인회가 삯바느질과 뜨개질 등으로 도와 15,000달러를 만들었다. 태평양전쟁에서 퇴역하여 미 해양대학교 실습선으로 쓰이고 있던 배를 구입했다. 뉴욕에서 하와이를 거쳐 진해항에 들어오는 도중에 함포를 얹었다. 진해항에서 한달 동안 녹을 떨어내고 함수 양현에 '701'이라고 썼다. 대한민국 최초의 군함이 시험운항을 마치고 진해로 돌아온 시각은 6월 24일 밤 11시30분이었다.

▲ 당시 백두산함에서 갑판사관 겸 항해사ㆍ포술사로 전투에 임했던 최영섭 한국해양소년단 고문(85. 해사 3기)이 63년 전 4시간 여의 전투상황을 마치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해 (세창미디어)을 펴냈다. 최 고문은 전쟁 발발 4개월 전에 소위로 임관돼 서해안봉쇄작전, 제1ㆍ2차 인천상륙작전, 함경도 성진 해상진격작전 등에 직접 참전했다. 군에서조차 소홀히 했던 각종 기록과 자료, 생생한 증언들이 '난중일기'처럼 기록돼 있다.

▲ 최 고문은 2007년엔 "아직 열두 척이 있고, 신은 죽지 않았습니다(尙有十二 舜臣不死)"는 이순신 장군의 화두를 좇아 전남 고하도를 답사했다. 잊혀져 있던 조그만 섬을 구석구석 답사하여 를 펴냈다. 백두산함을 구입하면서 돈이 부족해 포탄을 100발 밖에 살 수 없었을 때 '尙有十二'를 기억했다고 한다. "사라질 뻔했던 대한민국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지켜졌는지 후손들에게 알려야 한다." 팔순의 나이에 안질과 관절염까지 견디며 기록을 남기는 이유라고 했다.

정병진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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