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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6월 4일] 386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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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6월 4일] 386에 대한 단상

입력
2013.06.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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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이다. '3'은 90년대 당시 30대를, '8'은 80년대에 대학에 다닌 80년대 학번을, '6'은 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을 지칭한다. 즉,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90년대에 30대였던 세대가 바로 386세대로서 9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386컴퓨터에 빗댄 말이다. 당시 최신형 사양을 자랑하던 386컴퓨터와 386세대의 젊고 역동적 이미지는 잘 어울렸다. 386세대들이 나이가 드니 486세대라는 말로 바뀌었고 최근엔 586세대라는 말도 등장하고 있는 걸 보면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한다.

386세대의 특징을 사회와 역사에 대한 높은 관심과 책임감, 단결력 등으로 요약하는 데에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8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들은 물론 소극적 참여자, 방관자들 역시 시대와 사회에 대한 관심에 소홀하지 않았다. 아니 소홀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시 대학가의 대화는 정치, 사회, 역사에 대한 토론으로 도배되다시피 하였다. 학생운동으로 인해 도피하다 만난 여인과의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 의 대사처럼 "그때는 혼자만 행복하면 미안한 시대"였기에 386들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여학생들이 짙은 화장을 하거나 눈에 뜨이는 요란한 복장을 하는 것도 금기시되었고 심지어 연애를 하는 것도 주변의 질타를 받을 정도로 교조적이고 경직된 생활을 했다. 시대의 짐은 너무도 크고 무거웠기에 다들 짓눌리며 살아갔다는 것이 더욱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강의실보다 술집이 훨씬 익숙했던 386들은 "우리가 기성세대가 되면 세상은 변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짧으면 10여년 후, 길면 20여년 후, 곧 우리가 30대 또는 40대의 나이가 되어 사회의 중추가 되면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386들은 민주, 자유 등의 단어에 익숙한데다 결속력도 강하니 말이다.

이런 생각이 근거 없는 낙관이었음을 확인하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망은 386출신 정치인들로 인해 시작되었다. 이른바 '젊은 피'라 불리며 정치개혁을 위해 수혈된 386 운동권 출신들은 기대와 달리 기성 정치인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참신한 모습은커녕 계파정치에 함몰되거나 기득권에 안주하는 등 구태를 답습했던 것이다. 기대가 꺾이자 386에 대한 평가는 혐오로 변했고 386이란 단어 역시 극복 또는 배제되어야할 케케묵은 구태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되었다. 컴퓨터의 사양이 눈 깜짝할 사이에 486, 펜티엄을 훌쩍 넘게 되자 386컴퓨터가 낡아빠진 고물로 취급되던 것과 유사한 경우라고나 할까.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 준 386정치인들과 달리 대다수 386들은 이들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조금씩 진보하고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 역시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정치가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도 많은 386은 민주화 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과시하는 유치한 자들이었고 그들이 그토록 경멸했던 지역과 학연 등에 얽매이는 한심한 존재들이었다. 인간이란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니었는데 짧은 학습으로 얻은 지식과 옅은 감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부터 잘못이었는지 모르겠다. 민주화 이후 삶의 질이 높아지기는커녕 하강한 데다 부하 직원과 알바생의 노동을 착취하면서도 입만 열면 민주와 정의로 점철된 회고담을 강요하는 386들의 행태야말로 '일베'같은 황당한 담론이 나오게 된 배경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최루탄 가스에 범벅된 길바닥에 주저앉아 목 놓아 애국가를 부르던 그 시절 대학생들의 모습도 어쩌면 지나가는 하나의 유행과도 같은 것에 불과하였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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