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윤
시사평론가
1월 초, 이 란에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썼던 입장에서 말한다. 막바지 단계인 검찰수사를 통해 국정원직원댓글사건에 대한 경찰의 축소은폐(1차범죄)와 증거인멸(2차범죄)이 확인되고 있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공직선거법률위반이나 국정원정치개입금지위반을 넘어선다. 축소은폐-증거인멸은 국기(國基)를 더럽힌 헌법적 사안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황교안 법무장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적용 재검토를 지시했고, 검찰수사팀은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진상규명 후 문책과 전ᆞ‧현직 대통령의 책임조치가 없다면, 현 정권은 정통성 시비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선거관리는 선관위 소관이니 나는 책임질 일이 없다’고 할 것인가? 국정 총괄책임자로서 옳지 못할 뿐더러, 법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고, 국정원장은 대통령에게 직보하고 지시받는다.
지난 대선의 막판 중대 분수령이었던 국정원직원댓글사건 당시 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 역시 결과적으로 이 사건의 이해 당사자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은 이 사건이 정치적 고려 일절 없이 수사가 진행되도록 보장해야 하며, 불법행위 관련자는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경찰‧국정원의 불법이 드러났으니 지난 대선은 무효”라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당시 경찰이 사실대로 발표했다고 치자. 박빙이었던 선거전은 중대 영향을 받았겠지만, 선거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어느 순간에도 국기가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한민국정부는 정통성을 획득하고, 헌정질서가 유지된다. 검‧경이 이 사건을 수사권독립 알력과 연관시켜 아웅다웅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5년 전 ‘광우병논란’으로 초래된 촛불시위저항의 전개과정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일단, 그리고 역시, 경찰이다. 대한민국경찰의 최첨단 정예부서 답게 사이버수사대는 역시나 고단수였다. 지난 정권 때 총리실 민간인불법사찰이 들통나자 ‘디가우징’이라는 컴퓨터데이터 삭제법으로 증거를 인멸했는데, 이번에 경찰은 그 보다 한 수 위인 ‘안티포렌직’ 이란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디가우징보다 한 단계 진화한 것으로, 복구가 아예 불가능하단다. 경찰은 검찰 압수수색팀이 출동해있는 현장에서 보란 듯이 대놓고 증거인멸을 자행했다. 무엇으로부터 누구를 보호하려 그랬는가? 이러고도 수사권독립을 요구하는가?
경찰의 축소은폐 이력은 찬란하다. “탁 하고 책상을 치자 억 하고 쓰러져 사망했다”는 고 박종철열사 사건, 부천서 성고문사건 등 열 손가락으로는 도저히 꼽을 수 없다. 이번에 마저 뜯어고치지 못하면 국민들은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에서 한 걸음도 헤어날 수 없다. 그 불신은 결국 정부와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수사 축소은폐와 증거인멸은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는 것일 따름이다.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인 약속과 신뢰를 위해서라도 일부 정치 경찰들의 ‘악성 DNA’는 도려내야 한다. 그게 경찰이 사는 길이기도 하다. 이명박정부가 출범 직후 왜 위기에 직면했고, 임기 내내 국정운영동력을 상실했는가? 광우병 쇠고기논란을 가벼이 여기고 부정직하게 대처했던 게 주 원인이다. 그 파장과 교훈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짧게는 현 정부의 정통성 시비를, 길게는 대한민국정부의 수준을 가름할 중대 사안에 임하는 검찰은 들으라. 그랜저검사에 벤츠여검사, 검사실 여성피의자 성추행검사로는 경찰과 국민의 볼멘 소리를 막을 수 없다. 검찰 자신부터 당당해져야 ‘령’(令)이 선다. 우리 검찰에게 부끄러운 과거만 있는 건 결코 아니다. 2004년, 당시 안대희 중수부장의 대선불법자금수사팀은 거악 척결의 모범을 보였고, 국민들은 대검청사로 떡을 보내며 응원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그런 전통을 이으면 된다. 정치경찰은 벌을 기다리라. 반성과 용서는 그 다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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