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는 '원자력발전소 수출'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이 전 대통령은 원전에 대해 "미래의 핵심 성장동력"이라며 수출 드라이브를 걸었고,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부터 원전 수주를 따내자 정부는 '단군 이래 최대 해외사업'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형 원전 80기 수출이라는 목표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이명박정부가 원전을 비즈니스모델로만 접근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안전성 문제는 상대적으로 도외시됐고 결국 지금의 총체적 관리부실과 전력대란 우려를 낳게 됐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명박정부가 원전안전에 소홀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난해 원전 납품비리와 관련, 감사원이 특별감사를 벌이고 원자력안전위원회도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나서긴 했지만 그 이후 범 정부차원의 특별 후속조치는 따로 없었다. 관련자 형사고발, 원안위ㆍ한국수력원자력의 재발방지대책 발표 등의 통상적 조치만 취해졌을 뿐인데 당시에도 원전전문가들은 "일반 안전시설이 아니라 방사능을 다루는 시설의 비리 대책치고는 너무 안이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명박정부가 원전 해외수출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비리나 안전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응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위조 시험성적서 관련부품이 신고리 1~4호기와 신월성 1ㆍ2호기 등 최신형 에 설치됐다는 점은 이 같은 의구심을 더욱 키우는 대목이다. 특히 신고리 3ㆍ4호기는 UAE 수출 원전과 동일한 모델이다. 원안위는 "신고리 3ㆍ4호기와 관련해 시험결과까지 조작되진 않았지만 시험 그래프는 위조된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조사에서 정부가 수출 변수를 고려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원안위의 부품 서류 위조현황조사는 한계가 뚜렷했다. 원전 부품 납품 과정에서 첨부되는 품질검증서와 시험성적서의 위조 여부를 바로 발급기관을 통해 확인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해당서류를 발행하는 국내 시험ㆍ검증기관이 비리를 저지를 가능성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던 셈이다. 따라서 최근 10년간 품질서류가 위조된 납품 건은 561개 품목, 1만3,794개 부품이라는 점을 밝혀냈음에도 시험ㆍ검증기관의 시험성적서 위조 건은 '무사통과' 됐다. 당시 조사가 철두철미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 정부도 뒤늦은 안전대응과 관련해 책임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박근혜정부는 140개 국정 과제에 '원자력 안전관리 체계 구축'을 포함시키긴 했지만,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부처간 협의도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조직개편과정에서 원안위의 소속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는 등 정권 초 뒤숭숭한 상황도 원전안전에 대한 감시강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는 평가다.
한편 원전 3기의 가동중단영향은 바로 다음주부터 나타날 것이란 불길한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6월 2주차에 올 여름 전력난의 첫 고비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전력거래소는 이번 주의 예비 전력은 300만∼350만㎾, 다음 주는 250만㎾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예보했다. 8일 월성 3호기(70만㎾급)가 계획예방정비로 추가 중단되고, 기온도 이번 주 후반부터 낮 최고 29~30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예비전력 300만㎾ 이하일 땐 전력수급경보 '관심' 단계가 발령된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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