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동부 사할린(규모 8.2), 2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동부(규모 5.7), 20일 칠레 아이센 서부(규모 6.8) 등 불과 며칠 사이에 대형 지진이 세계적으로 세 차례나 잇따라 일어났다. 우리나라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도 5월 18일 발생한 규모 4.9 지진을 포함해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지난 달에만 열다섯 번이나 관측됐다.
지진 전문가들 사이에선 최근 일어난 일련의 지진들이 2011년 일본 도호쿠 대지진의 여파로 불안정해진 땅이 본격적으로 안정을 되찾아가는 과정일지 모른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적어도 3, 4년 동안은 이번처럼 적잖은 규모의 지진이 산발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020년대까지 초대형 지진 가능성"
지진학계에선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을 강타한 지진해일(쓰나미)을 일으켜 2000년대 가장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된 인도양 대지진(해저 규모 9.3)이 이후 5, 6년 동안 계속해서 크고 작은 여진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초대형 지진은 발생한 지역뿐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땅에 힘의 불균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땅덩어리가 움직이면서 발생한 힘은 응력(외부 힘에 대항해 원래 형태를 유지하려는 힘)의 형태로 곳곳에 쌓인다. 이때 응력이 어느 한쪽에 몰려 있으면 다른 쪽으로 나눠줘서 땅이 스스로 힘의 균형을 찾아 안정화하려는 움직임이 생기는데, 이게 바로 여진을 일으킨다. 힘이 어느 방향에서든 비슷해질 때까지 응력은 시간이 갈수록 옆으로 전파되고, 이에 따라 여진도 지속된다. 지진의 규모가 클수록 안정화 과정은 오래 걸리게 마련이다.
사상 초유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불러온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의 규모는 9.0으로 2004년 인도양 대지진과 비슷하다. 앞으로 3, 4년 동안은 여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실제로 태평양판과 일본 열도가 만나는 부분에서는 최근 중소 규모 지진의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칠레와 미국, 러시아 등 환태평양 지진대에 잇따른 강진이 도호쿠 대지진의 영향으로 일어난 여진일 가능성에도 그래서 무게가 실린다.
또 지진학자들은 인도양 대지진이나 도호쿠 대지진 같은 초대형 지진이 대략적인 주기를 갖고 일어나는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규모 8 이상의 지진은 1910~20년대와 1950~60년대에 상대적으로 많이 일어났고, 2004년 수마트라 지진해일 이후에도 연거푸 발생하고 있다"며 "대략 20년 동안 연속적으로 초대형 지진이 생겼다가 30~40년 정도 잦아드는 과정을 반복하는 듯 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앞으로 2020년대까지는 새로운 초대형 지진이 더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국내 유감 지진 횟수는 비슷
지난달 열 차례 넘게 이어진 백령도 해역의 지진 역시 일본 도호쿠 대지진의 영향이 인접 지역인 한반도에 미친 결과일 거라는 추정도 나온다. 1978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래 한 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지진이 연속해서 기록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실제로 백령도 지진 전에도 속리산과 서해 연안, 울진 앞바다 등 국내 다른 곳에서도 예년에 비해 지진이 많이 보고됐다" 말했다. 기상청이 올 1월부터 5월 22일까지 집계한 규모 2.0 이상의 국내 지진은 총 31회다. 1999~2011년 2.0 이상 지진이 연평균 43.6회 발생했음을 감안하면 꽤 잦다. 지난해엔 56회로 평균을 훌쩍 넘기도 했다.
도호쿠 대지진의 영향이라고 결론 짓기엔 이르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이번 백령도 지진 중 가장 강했던 건 지난달 18일 백령도 남쪽 31km 해역에서 일어난 규모 4.9였고, 이후 이보다 작은 지진이 10회 더 있었다. 신진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규모 5.0 안팎의 지진이면 여진이 5회 정도 이어지는 게 보통인데, 백령도에서처럼 10회는 이례적"이라면서도 "원인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1970년대 이래 기술의 발달로 관측되는 지진의 횟수는 늘고 있지만, 사람이 느끼는(유감) 지진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신 연구원)는 사실도 도호쿠 대지진의 영향으로 인한 변화를 단정 짓기는 어렵게 한다. 일반적으로 내륙에서 규모 2.5~3.0 정도의 지진이 일어나면 진앙 부근 10km 이내에 있는 사람이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수도권도 지진 대비해야
백령도와 아이센, 캘리포니아, 사할린 등은 모두 과거에도 지진이 자주 발생했던 곳이다. 이들 지역은 앞으로도 지진 요주의 지역으로 눈여겨봐야 한다는 데 대해선 지진학자들 대부분이 동의한다. 지진은 났던 데서 또 나기 때문이다. 한 번 움직였던 땅은 작은 힘에도 다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단 과거 지진이 일어났던 곳이라도 땅속을 지탱하고 있는 기반암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기반암이 단단한 곳은 땅에 응력이 오랫동안 쌓여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대규모로 움직일 수 있다. 퇴적암처럼 무른 기반암 지역에 비해 지진이 잦진 않지만, 한번 났다 하면 크게 난다는 얘기다. 이런 대표적인 지역으로 지진학자들은 수도권을 꼽는다. 홍 교수는 "수도권의 기반암은 선캄브리아 시대(약 5억 8,000만년 전 이전)에 만들어져 아주 단단하고 안정돼 있다"며 "1978년 이후엔 다른 지역에 비해 관측된 지진 횟수가 적지만,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도권에 큰 지진이 많았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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