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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6월 3일] 칸 영화제 단편 황금종려상 문병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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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6월 3일] 칸 영화제 단편 황금종려상 문병곤 감독

입력
2013.06.0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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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단편영화로 칸 수상이탈리아 작품이 수상할 줄 알았는데제인 캠피온 감독이 좋게 봐줘상금은 없어… 앞으로 더 출품할 것생명공학과 다니다 감독의 꿈 공부 늦게 시작해 가진 콘텐츠 빈약편의점·극장·웨딩홀 등 다양한 알바노동해야 책상 앉아있는 죄의식 덜해프로 스태프들 덕 많이 봐여주인공은 단편영화계 스타배우향후 영화제 수익 스태프와 나눌 것이야기 결론 만드는 것 가장 힘들어

문병곤(30) 감독의 단편영화 '세이프'가 최근 열린 제 66회 칸 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 단편영화는 송일곤 감독의 '소풍'이 1999년 칸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적 있다.

문 감독의 '세이프'는 슈퍼맘 문제를 다룬 'no more coffee break(이제부터 휴식은 없다)'(2008년) 독거노인 문제를 다룬 '불멸의 사나이'(2010년)에 이은 세번째 작품. '불멸의 사나이'도 2011년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받았다.

'세이프'는 불법 오락실 환전소에서 일하는 여대생이 학비를 벌기 위해 도박중독자에게 환전액수를 속이다가 금고 속에 갇히게 된다는 13분 가량의 영화.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사장 안성기)의 단편영화창작지원사업인 필름스게이트 지원금 500만원과 자비 300만원을 들여 완성했다. '안전하다'와 '금고'라는 뜻을 지닌 '세이프(safe)'를 통해 금융자본주의의 덫에 걸린 불안한 현대인을 잘 묘사했다. 줄거리를 다 알고 봐도 긴박감 넘치는 연출이 시선을 놓지 못하게 한다. 그를 만났다.

-수상을 예상했어요?

"아뇨. 9편이 본선에 올라왔는데 저는 이탈리아 여자감독이 만든 '오펠리아'가 받을 줄 알았어요. 해변가에서 누드로 선팅을 하는 장면을 보러 갔던 꼬마 두 명이 바닷가에서 변사체를 발견하고 어쩔 줄 몰라서 산 속으로 끌고 가서 묻는 이야기거든요. 이번에 수상한 두 편까지 모두 다 밝고 성장 이야기인데 제 건 비극이잖아요. 요즘 좀 힘드니까 밝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심사위원장인 제인 캠피온 감독이 좋게 보신 거 같아요."

-제인 캠피온 감독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고요.

"네. 대기실에서도 있었고 심사위원들하고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엄청난 독서량과 지식이 느껴지더라고요. 취향을 물어봤더니 안톤 체호프 좋아한다고. 고전소설 좋아하고 러시아소설 좋아하고 끊임없이 읽는데요."

-문감독 자신은 어떤 작가를 좋아해요?

"니꼴라이 고골 좋아해요. 세르반테스류의 희비극도 즐겨 읽어요. 톨스토이는 대중적이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너무 어려운데 그 사이에 고골이 있더라고요."

-우리나라 작가는 잘 읽어요?

"김영하, 박민규 아니면 김동인 '감자'나 황순원 '소나기' 김유정 '동백꽃'. 한국문학단편선에 있는 그런 정서는 좋은 거 같아요."

-좀 나이답지 않은 작품들로 가네요.

"공부를 늦게야 해서 제가 가진 콘텐츠는 뭔가 좀 비어있는 거 같아요. 중학교 때는 멍하니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교과서 문학책을 재미있게 본 정도여서. 군대 가서 이야기세계사, 이야기한국사 같은 만화책으로 책 읽는 연습을 했고요. 대학교 가서 책을 읽었어요."

-특별히 영화감독이 되려고 한 이유가 있어요?

"처음에는 명지대 생명공학과를 다녔어요. 그런데 반 학기 다니면서 느낀 건 적성에 안 맞고 영어도 안 되는데 원서를 읽으라니 버겁고 학교도 멀고. 그런 와중에 같은 학교 과(중앙대 영화학과) 선배인 형이 워크숍간 사진을 봤는데 수업이 되게 재미있게 보이는 거에요. 고등학교 때 임권택 감독을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대부분 취직하면 정년이 금방 와서 할 일도 없는데 머리가 하얄 때까지 정력적으로 일하는 걸 보니 저건 정년이 굉장히 긴 직업이다, 뭔가 명령과 지시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때부터 관심이 있었고 형 워크샵 사진을 보고 가야겠다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첫 작품 'no more coffee break'는 졸업하면서 만든 건가요?

"그건 3학년 과제였고요. 4학년 때 졸업작품을 못 찍어서 학교는 수료만 했어요. 우리 학교는 영화 찍어야 졸업을 해요. 그 상태에서 회사를 다니고 아르바이트 인턴하고 그랬어요. 2010년에 찍은 '불멸의 사나이'가 졸업작품이에요."

-아르바이트 인턴은 영화감독들한테서 한 건가요?

"그런 거는 제 전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거라서 못 했고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편의점 극장 웨딩홀 뮤직비디오 닥치는대로 일해요. 빵 포장도 하고. 노동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어요. 일을 어느 정도는 해야 마음 편히 책상에 앉아있는 것도 죄의식이 덜 들고. 그래서 늘 일을 해요. 마지막으로는 씨제이(CJ E&M)의 창작공간 관리자를 했어요. 셀(방)이 여러 개 있고 씨제이서 일하는 감독님, 작가님들이 있어요. 편집하고 시나리오 코멘트도 하고 휴지 떨어졌다 그러면 갖다 주고 인터넷 안 된다 그러면 그것도 연락해주고. 한직이라 실제로는 책 읽는 시간이 제일 많았어요."

-한 달 수입은 독립적으로 살 정도는 확보한다 이건가요? 부모님이랑 사는 건가요?

"중2? 중3? 때부터 부모님은 시골 살고 형제들만 서울 살았어요. 아버지가 동아그룹을 다니셨는데 IMF 때 부도 났잖아요. 부모님은 대구 내려가셔서 아버지는 자영업 하시고 어머니는 조그만 미용실 하시고 저희만 공부한다고 남았어요. 조그만 아파트에서 형제 셋이 살다가 누나는 시집갔고 형은 브라질로 일하러 가고 저 혼자 남아서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어요. 14평짜리라 저는 원래 마루에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혼자 쓰니까 작업실도 만들고 좋아요. 대신 형이 결혼하면 저는 나가서 살 길을 알아봐야지요. 하하"

-개포동 아파트 비싼데 그거 팔아서 강북에 아파트 두 채로 나눠야지요, 하하.

"형이 이야기 훨씬 잘 만들고 논리적인데 그만 두고 일했어요. 남자가 둘 다 영화 만들면 힘드니까 장남인 형이 희생을 한 거지요. 지금은 브라질에서 한국 대기업 이벤트를 대행하며 잘 지내고 있어요. 칸에 2011년에 가면서 '다 접고 이리 와라, 같이 해보자' 그랬는데 망설이더니 이번에도 전화했는데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형이 갈 때가 2008년인가 2009년인데 저는 엄마한테 '앞으로 10년간 돈을 못 벌거다. 주지 못할 거고 받지 않겠다. 대신 앞으로 내가 하는 일에 뭐라 하지 마세요.' 그때부터 일했는데 사실은 지금도 염치없이 받고 있지요. 많이는 아니지만."

-이번 영화에 들었다는 300만원도 그런 건가요?

"그건 제가 창공관리자로 다섯 달 동안 일하면서 500몇만원을 번 데서 나갔어요."

-'불멸의 사나이'를 보면 도와주신 분에 문순식 이정미 문병연씨가 있던데요.

"아버지 어머니 형입니다. 하하. 부모님이 500만원 주시고 형이 40만원 줬나?"

-단편 영화감독이 장편을 못하는 것은 디테일 지구력 이런 게 안 되는 거지요?

"호흡의 문제지요. 저도 그걸 키우려고 봉준호 감독님 시나리오는 다 한번씩 공책에 베껴썼어요. 처음에는 소설 (김승옥)을 베껴 썼어요. 정말 잘썼더라고요. 그 다음에 봉준호 감독님 했는데 글에는 덜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영화시나리오는 글이 아니다. 글을 못써도 이야기 전개를 잘하면 되는구나 그걸 깨달았어요."

- '세이프'는 제작에 뭐가 돈이 제일 많이 들어갔어요?

"개포동 지하주차장에 환전소 세트를 짓는 거에 150만원, 카메라 대여에 100만원, 조명에 100만원, 이런 게 제일 커요."

-세트 짓는 것은 돈 주고 허락 받았나요?

"돈은 안 들었고요. 대신 일주일만에 끝내라 그래서 사흘 동안 세트 짓고 나흘 동안 찍었어요. 연기 연습도 하루 하려고 했는데 관리소장님이 시끄럽다고 기분 상하셔서 연습도 못하고 곧바로 촬영에 들어갔어요. 진짜 주차장이라 사람들이 차를 몰고 들어오면 1일 주차권을 드리면서 다른 데로 안내해드렸어요."

-이번에 배우들 덕을 많이 봤다고요.

"도박 중독자 역할을 한 (강)태영이는 2011년 칸에 간 '고스트'에 아동성애자로 나왔고요. 여주인공을 한 이민지씨는 단편영화계에서는 유명해요. 베를린 영화제 두 번 가서 그 중 한번은 2등상 탔고 베니스 가서 오리종티 상 탔고. 조성희 감독 독립장편 '짐승의 끝' 주인공이었어요. 고치지 않은 얼굴이라 표현도 잘되고 예쁘고 개성있어요. 영화제에서도 그런 걸 좋게 봤던 거 같아요. 촬영기사님도 그렇고 저만 아마추어지 모두 프로이신 분들 덕을 많이 봤어요."

-상금은 없지요?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니까 상금을 물으셔서 없다니까 '뭐 그렇노' 하시더라고요. 장편이나 단편은 수상으로 수익이 생기니까요. 유럽에는 까날플뤼나 아르테 같은 단편 전문채널이 있어요. 프랑스 독일 캐나다 미국 영국의 배급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어요. 앞으로 영화제 더 출품할 건데 상금 있는 영화제도 있어요. 상영료를 주는 곳도 있고. 영화제 수익은 스태프들과 n분의 1로 나눌 거예요."

-이명박 정부에서 단편영화 지원이 많이 줄고 이후 바뀌지 않았는데 바라는 게 있다면요?

"단편 제작지원이 지금은 두 개 밖에 없어요. 영진위하고 필름스게이트. 당연히 늘었으면 좋겠고요. 렌트회사나 후반제작지원업체가 공모를 해서 카메라 업체는 카메라를, 후반작업 업체는 후반작업을 해주는 식으로 현물을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돈만 주니까 후반제작업체에 가서 깎는 것도 일이에요. 영진위 현물지원은 카메라가 없고 조명도 많지 않고 세트도 빌려주긴 하는데 양수리촬영소라 교통비가 더 들어요."

-만들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뭐에요?

"단편영화는 인력이 소모되는 작업이라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저부터 이야기에 설득이 되어야 하거든요. 결론을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이번 작품도 원작(권오강 각본)은 불법환전소가 무대지만 사회로 진출하려다 대학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인데 제가 회사원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금융자본주의의 한계를 그리는 것으로 싹 바꿨거든요. 금융자본주의의 현주소가 뭔지는 알겠는데 이걸 어떻게 강조해서 표현해주나 그게 마지막까지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아, 금고가 있었지. 돈을 빼내고 사람이 들어가면 가치가 교환되는 것도 다 표현될 수 있겠다. 그렇게 결론 나니까 쑥 가는 거지요. 촬영 중간에 환전소 사장을 맡은 형이 금고를 들다가 허리를 삐끗해서 구급차까지 불렀어요. 하마터면 영화 제작 중단할 뻔 했지요. 사전프로덕션이 중요하다,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차기작은 장편을 준비하는 건가요? 아니면 내일부터 다시 알바로 돌아가는 거예요?

"장편은 아직 시나리오가 안되어서 준비만 하고 있어요. 이 상 때문에 씨제이에서 일주일에 한번 나가는 기획자로만 일을 할 수도 있을 거 같고요."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로부터 받은 가르침이에요?

"가르침은 아니고 그냥 그렇더라고요. 공부하고 아는 것 많고 똑똑한 거 좋은데 그래도 일은 해야되는 거 같아요. 항상 저는 길거리 다니면서 일하는 사람들 많이 보거든요. 그런 사람들 보면 책상에서 글쓰고 있는 제가 부끄러워서 자꾸 신경 쓸 바에는 나도 했다, 그러고 싶어요. 그게 제 삶을 더욱 가치있게 만드는 거 같아요. 그러면 부채의식도 없고 건강한 삶인 거 같아요. 형평성도 맞는 거 같아요."

-형평성이라는 건 내가 너무 혜택 받아서는 안된다, 그런 건가요?

"어떤 가치와 목표가 공동체의 형평성을 향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막연히 하는데 쉽지 않지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 놓는 게 현기증 나는 일인데 훈련인 거 같아요. 잃을 게 없을 때 훈련을 빨리 해놔야 되는데 저도 욕심이 많은 인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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