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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다 끊겼는데… "치익~ 치익~" 재난현장의 수호천사로

입력
2013.05.3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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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대부분이 물에 잠겼고 산사태로 매몰자도 있습니다. 구급차와 장비 요청 바랍니다. HL0GRC(호출부호)."

집중호우로 경기 북동부 대부분 지역이 물바다가 됐던 2011년 여름 어느 날. 최광명 대한적십자사 아마추어무선(HAM)봉사회 경기지부장과 회원들은 서둘러 현장을 찾았다. 이들은 최대 6㎙에 달하는 안테나와 무전기, 발전기가 실린 차를 타고 폐허가 된 현장을 누비며 피해상황과 필요한 장비, 인력 등을 정확히 알렸다. 수해로 통신이 마비된 상황에서 이들의 활약으로 지원물자는 효율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다.

HAM은 정보기관이나 방송국, 군 등 국가나 기관이 아닌 개인이 무전기를 통해 다른 사람과 교신하는 사람. LTE 기술을 통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도 수분 만에 전송하는 초디지털 시대이지만, 아날로그 무전기도 꽤 쓸모가 있다는 사실이 재삼 확인됐다.

애초 HAM은 개인활동으로 시작됐다. 20세기 초 무선통신기술이 발달하자 송신기와 수신기를 만들어 통신을 주고 받는 애호가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미국 하버드대 무선클럽 멤버였던 엘버트 하이먼(Elbert. Hyman), 봅 알메이(Bob Almay), 페기 머레이(Peggy Murray) 세 사람이 만든 무선국이 그 시초로 평가된다. 3명의 성(姓) 이니셜을 따서 HAM이란 말이 생겨나게 됐다.

한국에 HAM이 처음 도입된 건 일제시대인 1937년. 해방 이후엔 분단이란 특수상황 때문에 '무선통신=간첩활동'이란 인식이 자리잡아 암흑기를 겪었다. 하지만 1955년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KARL)'이 창립되고, 4년 뒤 서울대에 최초 실험무선국 허가가 나며 성장기에 접어든다. 이후 1980~90년대 각종 무선통신 동호회를 중심으로 전국에 약 10여 만명이 활동할 정도로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HAM은 고급 취미로 분류돼 왔다. 수백만원 대에 이르는 송수신기와 안테나가 필요하고 전파 도달 범위가 국내외를 넘나들기 때문에 영어는 물론, 복잡한 주파수 관련 지식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실제 무선통신을 즐기려면 한국전파진흥원이 주관하는 국가기술자격증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또 주파수가 공공재인 만큼 에티켓도 엄격해 교신 내용이 국가 이익에 위배되거나, 영리목적, 특정 종교에 대한 것일 경우, 철저하게 제한 된다.

하지만 개인 취미 차원을 넘어 활용폭은 매우 넓다. 전파 도달거리가 많게는 수십만㎞이 고 때론 다른 통신수단보다 빠르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폭우ㆍ폭설ㆍ태풍 등 재난이나 산불감시 등에 활용하고,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어선들도 조업활동이나 조난 시 구조신호를 보내는 데 사용한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이듬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등 대형인재가 발생했을 때 원활한 구조를 위한 경찰과 소방당국의 교신 지원 수단이 되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서 한국전파진흥원이 발급하는 무선통신 자격증 소지자는 약 20여 만명이다. 이중 실제 통신기기를 구매해 무선통신을 즐기는 아마추어무선국 운영자는 약 4만여명으로 10년 전(7만명)에 비해 절반수준으로 떨어졌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재래식 무선통신의 매력은 떨어진 게 확실하다.

하지만 마니아들이 있고, 옛 향수가 있고, 또 쓰임새가 있기 때문에 애호가들은 어떻게든 HAM을 활성화하려고 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역시 최근 기존 1~4급의 HAM 자격증 가운데, 초급자를 위한 4급 취득 기준을 완화해 별도 시험 없이 8시간의 교육만으로 입문할 수 있게 문턱을 낮췄다.

연맹 김형수 이사장은 "HAM은 전파를 통해 서로 모르는 사람을 소통하게 하는 통신수단이자 유사 시엔 훌륭한 구조장비"라며 "무선통신 분야 발전을 위해 다른 나라 보다 상대적으로 엄격한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정부의 진흥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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