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에 근무하는 언론계 동료와 가볍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다 면박을 받았다. "그 드라마 나도 봤는데 걔 뜻밖에 연기 잘하데?" "걔라니? 요즘엔 연예인들 그렇게 부르면 안돼. PD는 말할 것도 없고 임원, 사장까지도 그런 배우한테는 비위 맞춰야 할 판이야." 한마디로 방송연예가에서는 시청률과 광고수입에 직결된 인기 연예인이 슈퍼 갑(甲)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웃자고 한 농담이었지만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져있는 연예인들의 위상이 새삼 놀라웠다.
■ 연예인들마다 왜 '공인(公人)'을 자처하는지 알만했다. 원래 공인이란 "국가 사회를 위해 일하는, 공적 활동을 하는 사람"(윤평중 한신대 교수)이 일반적 개념규정이다. 연예인은 그냥 유명인이다. 그런데도 공인을 자칭하는 이유는 심리적이다. 본래 의미의 공인인 정치인, 고위공직자 등보다 못할 것 없다는 신분상승의 자부심이다. 또 연예직업에 대한 오랜 콤플렉스의 보상심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할 개념인 공인을 지위 개념으로 오인한 것이다.
■ 사실 공인이 되는 게 그다지 좋은 건 아니다. 공인은 큰 영향력만큼 그에 합당한 사회적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고위관료 등에 대해서는 같은 부정에도 법률상 처벌의 범위와 강도가 훨씬 넓다. 한번 잘못을 저지르면 현 직업에서 거의 영원히 퇴출되는 것은 물론이다. 사실상 일거수일투족이 감시 받는 삶도 감수해야 한다. 공인에 대해서는 사생활의 자유는 포기하는 것으로 보고, 명예훼손의 범위도 아주 좁게 제한하는 게 어느 나라에서건 일반적이다.
■ 웬 가수가 성추행을 저질렀다 해서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세상에, 음주뺑소니부터 간통 도박 폭행 탈세 마약 성범죄까지 끝도 없는 명단이 나열돼 있다. 더 놀라운 건 대부분이 버젓이 활동 중인 사실이다. 공인이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공인으로서의 책임은 외면하는 것이다. 범죄 연예인들의 복귀를 쉽게 용인하는 그 바닥 풍토나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공인만큼이나 연예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합당한 책임을 지우는 게 사회가치에 부합하는 일이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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