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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사회 못지않게 동성애자 스스로 변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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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사회 못지않게 동성애자 스스로 변해야 할 때"

입력
2013.05.3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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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임근준(43) 씨는 1세대 커밍아웃 게이다. 1995년 서울대 재학시절 커밍아웃하고 동성애자 모임 '마음001'을 만들었다. 연세대 동성애자 모임 '컴투게더'와 함께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를 조직하고 고려대의 성소수자 모임 '사람과 사람'출범을 돕기도 했다. 22일 서울대 교정에서 만난 그는 "이제 사회 못지않게 동성애자 스스로가 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동성애자 차별 어떻게 풀어야 하나?

"동성애자에 대한 마음의 벽을 허물려면 동성애자들 스스로 세상 속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부딪쳐야 한다. 동성애에 관대하다고 믿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눈 앞에서 남성끼리 키스하는 장면을 보면 당혹스러워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아직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 동성애자가 많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가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커밍아웃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커밍아웃은 사회적 약자인 동성애자가 자기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이다. 과거 미국 흑인들처럼 게토나 할렘에 자기들끼리 모여 살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흑인 운동도 인권운동가가 아니라 1955년 평범한 흑인 여성 로자 팍스가 버스에서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당당히 앉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나. 현재 한국 게이들은 이태원이나 종로 뒷골목에, 레즈비언은 홍대 서교동에 모여 일본의 오타쿠처럼 사회에 나서지 않고 지낸다. 반면에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시각은 의외로 열려 있다. 동성 결혼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25%가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았나. 그간 동성애자들이 아무런 노력도 안 한 것에 비해 놀라운 일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시각은 당위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담론차원의 이슈 파이팅도 중요하지만 한 명 한 명의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자기 주변의 부모 형제 이웃의 인식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밝히는 건 근본적으로 개인의 자존감, 자긍심의 문제다. 커밍아웃을 포기하는 건 행복추구를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각자의 처지와 각자의 사회적 맥락이 다 다른데?

"동성애자 청년을 만나 '지금 당장 커밍아웃을 할 순 없어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라'고 말하면, 처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자꾸 생각을 말하다 보면 결국 하고 싶다고 답한다. 그렇게 마음만 먹어도 행동 패턴이 바뀐다. 보다 당당해지고 삶에 긍지가 생긴다. 연예인처럼 기자회견 하듯 커밍아웃을 할 필요는 없다. 홍석천씨가 커밍아웃을 하고 방송계에서 매장당한 예가 있다. 이 때문에 커밍아웃이 공포의 대상이 됐다. 우선 친구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동료들에게…. 그렇게 조금씩 자기를 받아들일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커밍아웃은 힘들다고 말한다. 스스로 생각의 감옥에 갇혀 있다. 95년 초기 인권운동을 시작하면서 공개강연을 다녔다. 협박 전화도 많이 받았지만 실제로 강연을 방해하는 이는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상식적이고 순하다. 사회적 불이익 우려도 있다. 하지만 거꾸로 묻자. 커밍아웃을 해서 폭행을 당하거나, 직장에서 해고된 경우가 있나? 폭행당했거나 해고됐다면 고소라도 해 본 사람이 있나? 일본 동성애자 가운데 교사가 특히 많다. 90년대 초반 한 교사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된 뒤 소송을 벌여 대법원에서 승소한 결과다. 자기를 숨기고 사는 걸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동성애자 스스로 바뀔 때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혹은 한계)도 있는 것 같다.

"유교적 집단주의 영향이 크다. 자기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집단이 정해놓은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나의 꿈을 좇는 게 아니라 '엄친아'로 표상되는 사회의 꿈을 추구한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기독교 사회고 개인주의 사회다. 누군가 커밍아웃을 하면 좋든 싫든 '정직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한국에서는 커밍아웃을 하면 '가족 체면이 있는데 어떻게 너만 생각하냐'고 말한다. 커밍아웃을 집단에 대한 배신으로 본다. 문제는 동성애자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데 있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면 부모님의 위신은 어떻게 될까''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개인의 행복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는 한국 동성애자인권운동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지금 동성애자인권운동은 10년 전의 운동을 답습하고 있다. 커밍아웃할 권리가 아니라 아우팅(자신이 원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것) 당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한다. 인권운동은 사회적 약자가 긍지를 되찾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나아가 기본적인 권리를 회복하도록 투쟁해야 한다. 그럼에도 '세상에 드러나선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실패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우리처럼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일본에서는 커밍아웃보다 아우팅 당하지 않을 권리를 강조했고, 선진국임에도 동성애자들의 권리는 대단히 취약하다. 지난해 도쿄 퀴어페스티벌에는 1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운집했지만 퍼레이드 참가자는 2,000명도 안 됐다. 시선이 두려워 거리로 나서지 못한 것이다. 소극적인 자세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사회가 바뀔 점은 없나?

"사회가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마존의 눈물'식이다. 동성애자는 불쌍하고 안타까운 관용의 대상이다. 그런 시선 속에서 동성애자들은 다시 한번 약자로 움츠러든다. 가장 큰 문제는 10대 청소년 동성애자들에게 '동성애자로 사는 건 끔찍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사회와 미디어라면 사회적 약자들에게 '지금은 힘들더라도 차차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미국 동성애자들이 벌이는 'IT GET'S BETTER'운동이 그 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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