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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경제 위기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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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경제 위기의 정치학

입력
2013.05.3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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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 화폐를 사용하는 17개국을 유로존이라고 부른다. 유로존은 2010년 그리스를 시작으로 스페인, 이탈리아, 아일랜드, 키프러스 등에서 연쇄적으로 재정 위기를 겪었다. 이를 타개할 해결사로 나선 나라가 독일이다.

을 통해 현대사회의 항시적 위험을 경고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 사회학자인 저자는 이런 상황을 "유럽은 독일이 되어 버렸다"고 한탄한다. 특히 독일이 예전처럼 무력을 동원한 것이 아닌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라고 지적한다.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원흉인 독일이 유럽 최고의 부국이라는 이유만으로 70년 만에 반성해야 할 학생에서 유럽을 이끄는 스승으로 발돋움한 현실이 기막히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이 추악한 역사를 망각하고 다시 권력을 움켜쥐려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심지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화의 위기를 자신의 권력을 축적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리스에는 경제 지원을 미끼로 강력한 긴축 정책을 강요하면서도 자국에서는 마치 독일이 유럽의 스승인 양 연출하며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제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왕관만 쓰지 않은 유럽의 여왕' 메르켈 총리의 이러한 정치 술수를 마키아벨리의 권력론에 빗대어 '메르키아벨리 모델'이라고 부른다.

"밖으로는 잔인할 정도의 신자유주의를, 내부에는 사회민주주의를 강조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이야말로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권력 위상과 독일 중심의 유럽을 구축해 온 성공 공식이다."(88쪽)

저자는 유럽의 지도국으로 부상한 독일이 유로화의 위기를 정치적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독일은 유럽의 정체성을 가지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 유럽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고, 통일까지 이룩했다. 그런 독일이 경제적 힘의 불균형이라는 조건을 이용해 '독일 중심의 유럽'을 만드는 것은 추악한 역사를 망각하고 유럽 통합의 이상을 부정하는 것이다. 독일은 평화와 연대 정신으로 통합된 유럽연합 안에서만 현재의 발전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또한 유로화의 위기는 채무국이 온전히 책임을 지고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고, 채권국이 채무국의 주권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는 유럽 통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이므로, 유럽 전체가 소통하고 협력해서 해결해야 하는 리스크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글로벌 리스크인 유로화의 위기가 민족국가 차원에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분석하고, 유럽이 제도의 형식성에서 탈피해 '개인의 유럽'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제도적이고 추상적인 유럽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유럽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저자는 '유럽을 위한 사회계약'을 맺자고 제안한다. 그럼으로써 '독일 중심의 유럽'이라는 메르키아벨리의 비전과는 완전히 다른 '개인들의 유럽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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