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민 대사님, 이야기를 게리 쿠퍼가 등장하는 서부영화 '하이 눈'으로 시작합니다. 그 영화를 재미있게 보려면 영화의 시작을 오전 10시 30분에 맞춰놓으면 훨씬 재미있지요. 87분짜리 이 영화는 영화 속의 시간과 실제시간이 일치합니다. 영화제목대로 한낮을 기해 주인공 쿠퍼가 4명의 악당들을 상대로 갈겨대는 총성을 실제시간인 정오에 들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공'을 현실로 바꿔 놓은 거지요. 영화라는 게, 또 소설이란 게 그런 거 아닙니까? 작가가 그렇습니다. 그 가공을 현실로 바꿔놓는 공인(工人)이 바로 작가입니다. 그것이 창조구요.
제가 좋아했던 작가에 고 장용학씨가 계십니다. 우리가 가난했던 대학시절 월간 '사상계'에 소설 을 연재했던 분이지요. 그분이 밥을 벌려고(저는 지금도 그리 여깁니다) 경기고 국어교사를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대학에 가서 무슨 학과를 선택할지 궁금히 여기는 고3 김화영(고려대 불문학과 명예교수)군 한테 고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과대학이나 문리과 대학에 가거라. 사람은 뭔가 만들어 내야 해. 물건을 만들든지, 글을 짓든지 뭘 만들어 내는 게 가장 중요한 거야" 제가 작가에 큰 비중을 두는 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창조라는 말 자체에 제가 오금을 못 펴는 것도 그래서고요.
권 대사님은 노작 를 출간하기 앞서 주독일대사를 역임하셨지요? 허나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 대사자리, 권 대사님 아니고도 누군가 하게 되어 있고, 지금도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분이 계시고, 또 메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나라살림이니까요.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책의 주인공 되는 최규하 전 대통령도 의 출고를 위해 존재했다는 말입니다. 권 대사님과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지은 제 불알친구 고 김기웅을 제가 뾰두둑 소리 나게 좋아하는 것도 그래섭니다. 창조를 노리는 자에겐 또 시국도 거듭니다. 일본작가 시바 료따로는 작가 톨스토이의 위대함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크리미어 전쟁은 톨스토이로 하여금 국가를 초월한 인간의 과제에 도달하게 만들었고, 적군한테는 적십자를 창설한 나이팅게일이 나오도록 만들었다"
물론 재능도 필요합니다. 서두에 꺼낸 영화 '하이 눈'처럼 우선 가공과 현실을 일치시키는 마법사의 능력이 요구되고, 소설을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직결시킬 줄 아는 최면사의 능력도, 이왕이면 손이 땀에 젖도록 발한(發汗)주사를 놓는 의사도 돼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재능은 한갓 참모기능으로 그칠 뿐 사령관의 기능을 하지는 못합니다. 빼어난 사령관은 사활이 걸린 싸움의 작전을 참모나 졸병 모아놓고 다수결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사령관이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싸움의 승패가 판가름 나지요. 작가가 그렇습니다. 작가의 시선이 늘 머무는 곳은 딱 한 군데, '감동(感動)의 샘'입니다. 그 샘은 쉬 보이지 않습니다만 영감을 지닌 사람의 눈에는 잘 보입니다. 나뭇잎이 떠는 건 아무나 볼 수 있되 영감을 지닌 사람은 거기서 바람을 보지요. 그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지를 영감의 소유자만이 감지합니다. 작가가 바로 그런 사람이지요.
1차 대전의 비화가 담긴 을 쓴 바바라 터크맨은 미국 여기자출신 작가입니다. 그 책을 쓰기 위해 작가는 유럽 여러 왕실의 외교문서와 전사(戰史)를 샅샅이 뒤집니다. 유럽왕실의 퀴퀴한 서고와 여러 도서관에서 찾아낸, 딱딱하기 그지없던 무미건조한 사료들이 터크맨의 붓을 거치면서 케네디 대통령이 입이 닳도록 격찬한, "역사적으로 가장 뛰어난 유럽외교사"로 둔갑한 것입니다. 한갓 사료 더미를 일약 '작품'으로 바꿔놓는 능력, '감동의 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작가의 능력이지요. 작가의 지혜이구요. 오늘부터 대사님을 작가라 부르리다. '토요에세이'를 통해 제가 몇 차례 강조했던 문필외교도 오늘로 마감하고요.
김승웅 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swkim43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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