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설가를 체험하는 작가와 상상하는 작가의 두 부류로 나눌 때, 헤밍웨이(1899~1961)는 전자를 가장 적확하게 대표하는 작가다. 진실로 쓰기 위해 그는 전쟁의 포염도 마다지 않았고, 신문기자의 직을 빌어서나마 늘 사건의 현장에 있고자 했다. 그래서 이 투신의 작가는 대표작 의 주인공 프레데릭의 입을 빌어 '나는 생각하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나는 먹고 마시고 캐더린과 자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모험에의 충동으로 평생을 일관했던 헤밍웨이가 스페인의 투우에 열광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1932년 출간된 은 오로지 투우를 보고 싶어 스페인으로 간 헤밍웨이가 투우에 관해 쓴 논픽션 다큐멘터리 같은 책이다. 깨알 같은 정보와 묘사로 가득찬 투우 안내서ㆍ개론서이자 헤밍웨이의 사상을 담고 있는 철학 에세이인 동시에 글쓰기에 관한 그의 창작론이기도 하다.
1차대전 참전으로 부상을 입었던 헤밍웨이를 스페인-주로 마드리드-의 투우장으로 홀린 것은 죽음을 관찰하려는 욕구였다. 책에서 그는 고백한다. "전쟁이 끝난 뒤인지라 삶과 죽음, 다시 말하면 격렬한 죽음을 볼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투우장뿐이었고, 나는 그것을 잘 살필 수 있는 스페인에 몹시 가고 싶었다. 나는 글을 쓰는 법을 배우려고 하였고, 그것을 가장 단순한 사물로부터 시작하려고 했다. 그리고 모든 사물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기본적인 것의 하나는 격렬한 죽음이다."죽음은 도처에 편재했지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감지 않고' 살펴볼 수 있는 죽음은 투우 외엔 없었다. 헤밍웨이에게 투우란 죽음을 탐구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죽음에 최대한 가까이 가보는 것, 즉 '죽음을 다루는 예술'이었다.
그러므로 헤밍웨이에게 투우는 글쓰기의 메타포가 된다. 물레타(붉은 천)를 휘두르며 소의 뿔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자발적으로 척살의 위험을 빚어내는 마타도르(투우사)는 절박한 위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위엄을 유지하며 진실에 육박할 수 있을까 되묻는 거울 이미지인 것이다.
1960년대 헤밍웨이 전집에 묶였다가 종적을 감춘 책을 고 장왕록 서울대 영문과 교수의 번역본으로 새롭게 펴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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