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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우리가 종북게이라고? 변태라고?… "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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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우리가 종북게이라고? 변태라고?… "반사!"

입력
2013.05.3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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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스터엑트의 주제곡 '헤일 홀리 퀸(HAIL HOLY QUEEN)'에 맞춰 다인종 다국적 남녀 10명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안무가인 존 블레이크(27)의 주문도 바빠졌다. "표정에 힘을 줘요." "엉덩이를 더 흔들어. ROCK YOU!" 매트(32)의 앙증맞은 어깨춤에 에디(27)는 웨이브로 화답하고…. 지난 26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클럽 '문나이트'에 열린문공동체교회의 성소수자 공연팀 '립 서번츠(LIP SERVANTS)'가 모였다. 1일 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에서 펼쳐지는 퀴어퍼레이드 춤 리허설을 위해서였다.

열린문공동체교회는 2011년 미국인 대니얼 페인 목사가 이태원에 문을 연 진보적 교회 공동체. 구성원의 다수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이고, 목사 자신도 게이다. 대니얼 목사는 "주변의 성소수자들에게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여기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참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퀴어퍼레이드는 성 소수자들이 벽장에서 나와(Come out of the closet) 다 함께 거리를 행진하는 행사다. 그들은 그 당당함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세상에 천명하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 인권의 가치를 사회와 공유하고자 한다.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사는 동료들에게 커밍아웃의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립 서번츠 팀의 한국인 에디는 긴 생머리에 늘씬한 몸매의 트렌스젠더. 그는 "나 같은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감격해 용기를 내서 커밍아웃 했어요. 아직 아버지는 저를 '아들'이라고 부르고, 관계도 조금은 껄끄러워요. 하지만 전 지금 행복합니다"라고 했다.

올해 퀴어퍼레이드의 슬로건은 'The Queer 우리가 있다'이다. 강명진 행사 조직위원장의 말처럼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언제나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다. 곽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운영위원장은 지난 2005년 행사의 기억을 떠올렸다. "초기 퍼레이드는 그 자체가 투쟁이었다. 참가자도 적었고 사회적 저항도 컸다. 2005년부터는 달랐다. 거리에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더라. 호응하는 이도 많았다. 그런 가슴 벅찬 기분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투쟁의 공간이던 퍼레이드의 거리는 그렇게 연대와 환대의 공간으로 변해왔다. 올해에도 우여곡절은 있었다. 처음엔 행사 자체를 반대하던 상인 중 상당수가 행사 취지에 공감하게 됐고, 업소 350여 곳이 축제 당일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내걸기로 했다.

26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 활동가 10여명이 모였다. 퍼레이드 차량을 장식하고 피켓을 준비하기 위한 모임. 책상 위에는 '성소수자 차별 반대''평등한 사랑 평등한 권리'라고 쓰인 피켓들이 놓여 있었다. "트럭에는 무지개 색을 칠하고 우리는 춤을 추자" "피켓은 '우리가 종북 게이라고? 무지개 반사, 우리가 변태라고? 무지개 반사'는 어떨까."회의실은 자주 웃음바다가 됐다. 그들 중에 바람(활동명ㆍ19) 군도 끼어있었다. 그는 동인련 청소년자긍심팀 활동가다. "고1 음악시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그 이유를 설명하게 하더라. 난'오버 더 레인보우'를 불렀다. 노래에 담긴 게이 코드를 설명하고 내가 게이라고 밝혔다. 욕설 문자도 오고 위협성 전화도 걸려왔다. 하지만 나는 잘못한 것도, 숨길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해서 나를 더 널리 알리고 싶다."

국내 성 소수자 숫자는 조사된 바 없다. 게이인권단체인 '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은 "대개 인구의 8% 정도가 동성애자다. 우리나라는 300만~400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축제 참가 인원은 이성애자까지 합쳐 약 2,000명. 2000년 첫 행사 참가자 50명에 비하자면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비슷한 규모의 외국 도시 행사와 비교하면 초라한 규모다. 퀴어퍼레이드가 성장하지 못한 이유로 행사 기획단의 소극적 방어적 전략을 문제 삼는 이들도 적지 않다. 퀴어퍼레이드 기획단 측은 2009년까지 참가자들에게 '내 사진을 찍지 말라'고 적힌 빨간 표식을 나누어 주며 사진 촬영을 금지했고, 2010년부터는 프레스카드를 발급 받은 사람에 한해 제한적으로 촬영을 허용하고 있다. 레즈비언 활동가 A씨는 "퍼레이드 자체가 우리를 사회에 알리겠다는 의미다. 세계 어느 퍼레이드 행사도 사진 촬영을 금하거나 제한하는 데는 없다. 우리끼리의 축제라면 굳이 거리에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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