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이라는 분야가 있다. 문화계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분야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문화경영이나 문화기획 또는 영역의 특성에 따라 예술행정으로도 불린다.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돕거나 예술단체를 운영하고 극장이나 미술관 등 문화공간을 경영하며, 공연이나 전시 또는 축제 등의 문화행사를 기획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여러 분야에서 문화를 활용하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문화마케팅이나 문화복지 또는 문화예술교육 등의 영역을 포함하기도 한다. 이 분야의 종사자들은 기획자, 제작자, 매개자 등으로 불리며 영어로는 프로모터, 프로듀서, 프로그래머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주말 이런 예술경영의 전문가 1세대이자 탁월한 중견 예술행정가의 갑작스런 별세 소식은 예술경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물론 문화 분야의 많은 이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 주었다. 26일 향년 53세로 별세한 김주호 롯데홀대표다. 그는 예술의전당 공채1기로,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초대원장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대표이사로 재직했으며 최근에는 모 기업이 건립하는 콘서트홀의 대표로 책임을 맡아 민간과 공공 영역을 넘나들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는데 그만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뜨니 사람들의 놀라움과 아쉬움은 무척 큰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분야의 가치와 역할 그리고 예술경영인의 비전과 안위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예술경영인은 직업 특성상 직접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아니고 충분한 경제적 보상이나 막강한 사회적 권력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컴컴한 무대 뒤에서, 때로는 좁은 박스오피스에서, 텅 빈 사무실에서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야근과 남들 다 노는 주말과 휴일 근무를 일삼으며 척박한 현실과 시장의 불투명성 속에 분투하고 있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여서 오죽하면 서양에서도 이 일을 우스갯소리로 '다크 라이프'(Dark Life)라 하지 않는가.
또한 화려한 무대와 객석의 환호를 뒤로하고 온갖 멀티플레이어로서 예술가에게, 후원자에게, 행정에, 관객에게 그리고 미디어에게 영원한 슈퍼 을의 역할을 감수해야 하면서도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이 일만의 즐거움과 보람에 약간의 사회적 책임감을 더해 버텨가는 것이다. 특히 이들의 삶의 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의 속성과는 다르게 여가나 휴식 또는 문화적인 삶과는 정작 동떨어진 것이 되기 일쑤다.
최근에는 문화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많아지며 대학에 전문학과도 많이 생기고 이 분야를 꿈꾸는 청소년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제한된 기회 속에 안정적이고 폼 나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최근 많은 청년들은 창업이나 독립기획자의 길을 모색하지만 이는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단단한 네트워크로 둘러싸인 기존의 생태계에 신인이 시장에 진입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이며 평판을 얻기까지 상당한 기간 인내와 헌신으로 기다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소 형편이 나아 보이는 각종 기관이나 재단들도 나름의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산이나 기금은 경기침체나 정책논리에 맞물려 깎이기 일쑤이고, 돈줄을 쥐고 있는 부처나 의회에 끊임없이 존재와 사업의 이유를 설득하며 생존을 위한 환경을 확보해야 한다. 열심히 할 일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이곳저곳 층층시하여서 끊임없는 페이퍼워크와 보고에 여념이 없고 각종 감사와 경영 평가는 실무자들을 녹초가 되게 한다.
애초부터 백스테이지의 일은 영광과 환호와는 먼 것 일수도 있으나 그래도 예술경영과 행정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예술가와 관객이 잘 만나고 시장과 정책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금도 어디선가 남모르게 난관을 극복하며 좋은 공연과 전시, 축제, 문화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이 존중받아야 한다. 문화융성도, 창조경제도, 문화강국도 이러한 활동에 대한 인정과 배려가 있어야 문화예술이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효과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선철 용인대 교수ㆍ감자꽃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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