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서울 용산 미군기지의 기름 오염문제와 관련해 기지 내부에 대한 조사 여부를 놓고 우리 정부와 처음으로 협의한다. 기름 유출은 12년 전인 2001년 처음으로 확인됐지만 한ㆍ미행정협정(SOFA)에 막혀 기지 내부조사가 이뤄지지 못했었다. 이 기간 동안 기름 유출은 지속됐으나 근본 대책 없이 미군 기지 밖에서 정화작업을 벌이는 식의 '땜질 처방'만 이뤄져 비판이 컸다.
31일 서울시와 환경부에 따르면 다음 달 17일 열리는 환경부와 주한미군 간 환경분과위원회의 회의 의제로 기지 내부조사 건이 채택됐다. 주한미군 측은 이 회의에 서울시 토양지하수과 공무원의 참석도 요청했다.
시는 용산 기지 기름 유출문제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기지 내부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요구해왔다. 수질ㆍ토양 오염이 심각하기 때문인데, 한국농어촌공사가 올해 2월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오염이 확인된 면적은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주변과 캠프 킴(Camp Kim) 대지 등 최소 1만2,235㎡에 이른다. 지하수도 7,178㎥(718만ℓ)가량 오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녹사평역 부근의 발암물질 벤젠 검출량은 평균 1.537㎎/ℓ로 기준치(0.015㎎/ℓ)보다 102배나 많은 것으로 조사됐는데, 오염이 가장 심각한 지점은 19.671㎎/ℓ로 기준치의 1,311배나 됐다. 톨루엔, 에틸벤젠, 크실렌, 석유계 총탄화수소의 경우 평균 농도수치는 기준치 이하를 기록했지만, 지점별 최대 농도는 기준치의 8~74배까지 나타났다. 캠프 킴도 석유계 총탄화수소의 평균 농도가 기준치(1.5㎎/ℓ)의 50배, 최대 농도는 966배를 기록했다.
시는 녹사평역 부근에서 기름 오염이 발견된 이후 용산 기지 외곽을 따라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양수정도 미군기지 담장 밖에 설치해 정화작업을 벌여 왔다. 미군부대는 SOFA에 의해 사실상 치외법권 지역으로 인정받아, 기지 안에 들어가 직접 조사하거나 정화시설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염상태가 개선되지 않았고 실제 오염 규모는 추정치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돼 시는 미군측에 기지 내부조사를 거듭 요청했었다.
시는 이번 '3자 회담'을 계기로 국내ㆍ외 시민단체와 함께 기지 방문 조사를 추진하고, 정화 용역보고서도 공개해 주한미군 측을 압박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주한미군 사령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환경 관련 정보 요구에 적극적이고 투명하게 협조할 것이며, 회의가 의미 있고 생산적인 토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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