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1일 내놓은 공약가계부가 그대로 실행되면 재벌 오너일가 및 그 계열사들의 세부담이 가장 크게 늘어난다. 재벌 총수 등 거액 자산가들이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와의 역외거래 등을 통해 은닉한 세원을 발굴하는 등 지하경제 양성화로 27조2,000억원의 세금을 거둬들인다는 게 당국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하경제 양성화의 주요 타깃은 영세 자영업자와 같은 취약계층이 아니라 그간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았던 거액 자산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의 세부담도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업종으로 추가 지정되는 일반교습학원, 부동산중개업, 장례식장업, 산후조리원 등에 대해선 세정 당국의 세원 감시 수준이 높아질 게 분명하다.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과 함께 추진되는 비과세ㆍ감면 정비(18조원), 금융소득 과세강화(2조9,000억원)는 '납세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했다'고 믿어 온 상당수 중산층의 세부담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비과세ㆍ감면 정비의 핵심 방안 중 하나인 소득공제 제도의 개편은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고소득층에 혜택이 집중되는 소득공제 비중을 줄이겠다'는 입장인데, 이는 2014년부터 봉급생활자 연말정산에서 근로소득ㆍ보험료ㆍ의료비ㆍ기부금ㆍ신용카드 소득공제가 사라지거나 그 폭이 대폭 축소되는 걸 뜻한다. 실제 2011년 기준 근로소득공제와 특별공제 규모가 각각 138조원과 43조원에 달했던 걸 감안하면, 이 부문에 대한 정비는 중산층 이상 봉급생활자의 급격한 세부담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중산층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 간 과세 형평성이 악화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비과세ㆍ감면 정비 대상에는 중산층 연봉자가 상당수 포함되는 반면, 비슷한 소득의 자영업자는 지하경제 양성화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세무 전문가는 "이번 방안에는 간이과세제도 정비 등 자영업자의 세원투명성 제고 대책이 빠졌다"고 평가했다.
향후 경제여건이 악화해 공약가계부 재원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도 세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140개 국정과제에 총 134조8,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상수(常數) 항목'이므로, 세입 확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 등 직접적 증세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석준 기재부 2차관이 "공약가계부는 내용을 바꿀 수 없는 '금과옥조'가 아니며 상황에 따라 증세 방안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경제적 약자 보호를 위해 대기업 계열사 등 우월적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등 규제기관의 과징금 부과액도 대폭 늘릴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불공정 경제행위에 대한 정부의 과징금 부과 조치가 행정소송에서 패소한 사례가 2008년 31%에서 지난해에는 20%로 낮아졌다"며 "엄정한 과징금 부과로 세외수입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국은 과징금 부과와 함께 ▲스포츠토토 전입금 확대 ▲정부부처 기술료 수입의 세입조치 등을 통해서도 5년간 2조7,000억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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