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선생을 기리는 추사박물관이 다음달 3일 경기 과천에서 문을 연다. 박물관에는 추사 친필 서간문 3종 23통(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4호), 추사가 연구한 금석자료, 필담서 등 진품 유물과 사진, 고서, 서화 등 모두 1만5,000여점이 전시된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추사 작품 상당수가 일본으로 유출됐고 국내에 남아있는 몇몇 작품도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현실에서 기초자치단체인 과천시가 박물관을 만들 정도의 작품을 어떻게 구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일제시대 국내에서 추사 자료를 수집해 유출한 일본인 학자의 아들 덕분이다.
과천시는 2006년 일본인 후지츠카 아키나오(藤塚明直)씨로부터 추사 친필 등 1만5,000여점을 기증받았다. 후지츠카 아키나오씨는 식민지 시대 추사 연구를 개척한 일본인 학자 후지츠카 츠카시(藤塚隣)의 아들로, 부친이 평생 수집한 자료와 소장품 일체를 기증한 것이다.
후지츠카 츠카시씨는 1926년 경성제대 교수로 부임해 조선시대 실학자 박제가 선생을 연구하다 오히려 추사 연구에 빠져들었다. 그는 오랜 기간 서울 인사동과 베이징의 유리창(고미술 거리)을 돌며 자료를 수집했다. 가격이 너무 비싸 구매할 능력이 되지 않는 추사 작품은 사진을 찍어 남겨뒀다. 그는 일본 패망 직전 자신을 찾아와 설득한 추사 연구가 손재형 선생에게 소장하고 있던 '세한도'(歲寒圖ㆍ국보 180호)를 넘기기도 했다. 후지츠카 츠카시씨는 아직도 추사 연구의 1인자로 꼽힌다.
이 때문에 과천문화원은 지난 2005년 국제학술대회 개최를 위해 후지츠카 치카시씨를 수소문 하다 아들인 아키나오씨가 93세로 생존해있다는 얘기를 듣고 일본 도쿄를 찾았다. 하지만 "추사 관련 자료는 전혀 없다"는 답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키나오씨가 부친이 평생 수집한 자료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당시 아키나오씨는 "당신들이 3년 연구자료를 보여줘 신뢰가 갔다"면서 "도쿄대에서도 기증을 요구했지만 줘봐야 도서관에서 먼지만 쌓일 것 같으니 과천시에서 자료 연구를 잘 해달라"고 요구했다.
아키나오씨는 2006년 1월 추사 작품 2,750점을 1차로 기증했고 같은 해 8월 조카딸에게 나머지 소장품을 모두 과천시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졌다. 이후 유언에 따라 나머지 소장품 1만2,000여점도 곧바로 과천시로 전달됐다.
과천시는 주암동 4,261㎡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로 추사박물관을 만들어 추사작품 상설전시실과 함께 후지츠카 가문이 소장하고 있던 고문서 등을 전시하는 전시실도 만들었다.
추사박물관 허홍범 학예사는 "추사 선생은 부친이 과천에 별장인 과지초당(瓜地草堂)을 만들고 자신도 말년을 과지초당에서 보내는 등 과천과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며 "후지츠카 아키나오씨가 추사 선생 자료를 기증하지 않았다면 추사박물관은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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