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라디오 DJ 이종환씨가 30일 새벽 서울 노원구 하계동 자택에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 고희를 넘기고도 음주와 흡연을 즐겼던 고인은 2011년 10월 폐암 진단을 받은 뒤 7년간 진행하던 교통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이종환의 마이웨이’DJ직을 내려놓고 항암치료를 받아왔다. 최근 암이 재발하고 폐렴에 걸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까지 악화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40년 가까이 인기 DJ로 활약하면서 무명 포크 가수들을 가요계로 데뷔시킨 국내 대중음악계의 큰 별이었다.
중앙대 재학 당시 교내 방송국에 몸담았던 고인은 우연찮게 음악감상실에서 DJ를 맡으며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그를 눈여겨본 MBC 간부의 권유로 1964년 MBC 라디오 PD로 입사했다. 임국희씨가 진행하던 ‘한밤의 음악편지’의 PD를 시작으로 ‘탑튠 퍼레이드’의 PD와 DJ를 겸하며 인기 DJ의 반열에 올랐다. 고인은 진행을 맡은 프로그램마다 성공시키며 주가를 높였다. 70년대 그가 진행한 ‘별이 빛나는 밤에’와 80년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는 MBC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라디오는 2등이 필요 없다. 오로지 1등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라디오 진행을 해왔다”고 말했다.
고인을 국민 DJ로 만들어 준 건 95년부터 2002년까지 방송인 최유라와 진행한 ‘지금은 라디오 시대’였다. 전체 라디오 프로그램 중 청취율 1위에 오를 만큼 높은 인기를 끌었다. 최유라는 “그간 함께 했던 남자 진행자 중 최고는 이종환씨였다”면서 “라디오 방송의 기본인 ‘말 욕심 안 부리며 상대방을 빛나게 해주는 것’을 그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96년 고인은 20년간 라디오를 진행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MBC 골든마우스상을 처음으로 수상했다.
팝 전문 DJ였던 고인은 재능 있는 신인 가수들이 앨범을 내는 데 도움을 주며 가요계에서도 이름을 드높였다. 70년대 초부터 라이브 클럽 ‘쉘부르’를 운영하며 어니언스 남궁옥분 변진섭 양하영 최성수 등을 인기 가수로 만들었다. ‘세시봉’ 멤버로 유명한 가수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등과도 친분이 깊었다. 데뷔 초 이씨의 프로그램에서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던 가수 이문세는 “이종환은 나의 영원한 멘토”라고 말하곤 했고, 쉐그린의 멤버 이태원은 “고인은 음악을 정말 사랑했던 분”이라며 “통기타 가수들이 노래할 곳이 없던 시절 무대를 마련해줬다”고 회상했다.
구설에 휘말리며 명성에 흠집을 내는 일도 있었다. 80년대 후반 신인가수에게 홍보비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받아 가로챘다는 혐의를 받은 뒤 미국으로 떠났고, 돌아와선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진행하다 청취자에 대한 폭언과 편향된 정치적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 프로그램에서 물러났다. 2003년 MBC ‘이종환의 음악살롱’에선 술에 취한 채 방송을 진행하다 DJ를 그만둔 적도 있다. 방송을 떠난 뒤엔 술과 담배를 끊고 항암치료에 전념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성성례씨와 1남 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은 6월 1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충남 아산. (02)2072-2011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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