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야 어떻게 국제사회에서 낯을 들 수 있을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대한민국 외교는 목숨 걸고 두 개의 국경을 넘어 천신만고 끝에 제3국에 이른 탈북 청년 남녀 9명이 끝내 북한 요원들에게 넘겨져 사지(死地)로 끌려가는 동안 낮잠만 잔 꼴이 됐다. 미성년자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그들이 북한에서 당할 고초를 생각하면 이번 일은 직무유기로 빚어진 인권 참사나 다름없다.
외교부는 탈북 청년들이 북한으로 이미 압송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서야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변명이다. 그런 변명이야말로 외교부가 이번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안이하게 인식하고 대처했는지를 드러낼 뿐이다. 중국을 벗어난 탈북자들이 라오스 국경에서 억류됐을 때부터 문제였다. 여행객을 가장해 월경하려던 계획이 엇나가 탈북 사실을 현지 경찰에 밝힌 순간부터 최소한 현지 우리 대사관은 즉각 탈북자들을 접촉해 정치적 망명임을 공식화 했어야 했다.
하지만 현지 대사관은 타성대로 '조용한 외교'를 택했고, 그마저도 무성의하기 짝이 없었다. 탈북자들을 이끈 주모 선교사는 경찰에 억류된 지 10일째이던 지난 20일 현지 우리 대사관에 "북한 말투를 쓰는 수상한 사람들이 와서 탈북자들을 만났다"고 알렸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탈북 의사를 확인하려고 떠 보는 것이니 겁 먹지 말라"는 답변뿐이었다. 외출을 맞아 탈북자들이 한국 대사관 등으로의 탈출을 기획했으나 "위험하니 하지 말라"는 식이었다고 한다.
현지 우리 대사관이 20일 가까이 탈북자 면담조차 하지 않은 채 라오스 정부에 의례적인 협조 요청만 되풀이 하는 동안 북한은 현지에 전용기까지 보내는 압송작전을 벌여 그들을 가로채갔다. 탈북자 중에 납북 일본인 여성의 아들이 포함돼 북한이 필사적으로 나섰다는 주변의 뒷얘기도 이번 실패에 대한 아무런 변명이 되지 못한다. 타성에 젖은 '탁상외교'로 생사가 달린 탈북자 문제를 처리하려 나선 것만으로도 외교부는 할 말이 있을 수 없다. 장관부터 자리를 걸고 철저한 경위 파악과 엄정한 징계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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