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제비'출신 탈북자 9명이 강제 북송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북한대사관 측이 군사작전을 펼치듯 치밀하게 나선 것과 달리 우리 대사관은 상황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총체적 무능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30일 탈북 지원 단체 등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라오스 당국에 억류된 10일부터 27일까지 무려 18일 동안 현지 한국 대사관의 영사 면담을 단 한차례도 받지 못했다. 탈북자들을 라오스까지 안내했던 한국인 선교사 주모씨 부부도 함께 억류돼 있었다는 점에서 현지 공관의 행태는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주씨는 한국 대사관의 보호를 받는 대신 세 차례씩이나 면회를 온 현지 교민을 통해 위기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한국 공관은 탈북자 일행의 긴급구조요청을 수 차례에 걸쳐 받고도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 공관이 주씨 일행에게 제공한 대응 조언도 서투르기 그지 없었다. 주씨 일행이 10일 라오스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렸을 때 현지 공관에 전화를 걸자 대사관은 탈북자 신분을 밝히라고 안내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씨가 20일 북한 말투를 쓰는 수상한 사람들이 와서 탈북 청소년을 만난 사실을 전했을 때는 "이민국이 진짜 탈북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려 떠보는 것이니 겁먹지 말라"고 엉뚱한 조언했다는 것이다.
주씨 일행은 16일 수도 비엔티안으로 압송된 뒤 24일까지 이민국에 머물며 한국대사관이나 미국대사관으로 탈출하는 계획도 타진했지만 현지 공관은 "10~15일쯤 기다리면 대사관에 들어올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는 것이다. 현지 공관은 27일 라오스 이민국이 주씨와 탈북 청소년 일행을 분리하고 주씨가 "아이들을 빼돌렸다"고 신고한 뒤에야 대사관 관계자를 이민국에 보내 '뒷북 수습'에 나섰다고 한다.
외교 당국의 정보력 부재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우리 외교부는 탈북자들이 북송된 지 만 하루가 지난 29일 오후까지 북송됐는지 중국에 머물고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초기 대응 실패와 상황 오판 지적에 대해 외교 당국은 변명으로 일관, 화를 키우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경찰에 붙잡혔을 때 탈북민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일행이 미성년자여서 우리 측 안내인이 인신매매범으로 오해받을 우려가 있었다"면서 "해당국과의 원만한 협조관계를 감안할 때 솔직하게 답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영사 면담이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서는 "주씨와 수시로 통화하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변명했지만 결국 사태를 오판했음을 인정한 셈이 됐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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