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 부품에 대한 시험성적서 위조 파문은 국내 원전부품 납품시스템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부품 시험ㆍ검증기관이 안전성 평가결과를 위ㆍ변조했다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이들의 평가결과에 대한 재검증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새롭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건축으로 치자면 감리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29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국내 원전에 납품되는 부품의 성능을 시험ㆍ검증하는 검증기관은 총 7곳. 모두 민간기관이며 대한전기협회로부터 전력산업기술기준(KEPIC) 인증을 받고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원전부품 납품사들의 의뢰를 받아 부품 검증작업을 한 뒤, 평가보고서 서류는 원전 설계ㆍ감리 역할을 맡는 한국전력기술에, 부품 자체는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에 보낸다.
문제는 현재의 부품 검증시스템이 검증기관의 '정직'한 업무수행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 한전기술은 검증기관의 판단을 믿고, 한수원은 한전기술의 판단을 믿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번처럼 검증기관이 시험성적서를 멋대로 바꿔 버려도 이를 적발해 내기 쉽지 않다. 한전기술 관계자는 "검증기관의 보고서를 무작정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굉장히 까다롭게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아무래도 실물은 없는 상태에서 서류검토만 하다 보니 한계는 있다"고 말했다. 핵심설비인데도 실물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다보니 서류만 정교하게 위조하면, '무사통과'할 수 있음을 시인한 셈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력핵공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납품업체로부터 의뢰를 받아 부품 평가를 하는 검증기관 외에도 제3의 검증기관이 나서 재검증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전성이 확실히 담보될 때까지 두 번, 세 번 직접 검증을 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를 사실상 생략해 버린 결과 이번 위조 사건이 터졌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 원전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업체인 S사가 원전의 내진검증도 수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내진검증이란 원전이 지진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 현재까지는 S사가 내진검증 보고서도 위조했다는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런 업체가 내진 같은 핵심설계에 대한 검증을 맡았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한수원은 전날 밤 10시쯤 S사 대표와 전 직원, 제어케이블 공급업체인 J사 대표 등 3명을 사문서 위조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소한데 이어 두 회사를 상대로 한 가압류신청도 냈다. 한수원 관계자는 "형사사건 수사 진행을 지켜보면서 가압류 금액을 확장하고 민사사건 제소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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