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29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 등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서류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를 이용해 세금을 빼돌려 온 대기업 사주 등 23명에 대해 전격 세무조사에 착수하면서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역외탈세 수법과 실상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국세청 분석에 따르면 이번 조사 대상 23건 가운데 8건은 BVI, 6건은 홍콩, 9건은 파나마ㆍ싱가포르 등을 탈세 경유지로 삼았다. 여기에 올 들어 이미 조사가 종료돼 총 4,798억원을 추징한 역외탈세 83건과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45건을 종합해 보면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역외탈세의 대표적 유형을 파악할 수 있다.
중국과 동남아에 생산공장을 설립한 A씨는 중국 공장이 해외거래처 수출로 얻은 이익을 지주회사로 연결된 홍콩의 페이퍼컴퍼니에 배당했다. A씨는 배당소득을 해외비밀계좌에 은닉해 소득 신고를 누락했다. A씨는 또 동남아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BVI 소재 페이퍼컴퍼니를 우회해 수출했다. A씨는 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받은 무역 소득도 해외비밀계좌에 은닉하고 신고를 누락했다. 국세청은 A씨에게 소득세 299억원을 추징하고 해외금융계좌 미신고 과태료 20억원을 부과했다.
전자부품 도매회사의 사주 B씨는 법인세가 낮은 싱가포르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B씨가 사주로 있는 회사는 싱가포르 현지법인에 소득을 이전했고, B씨는 현지법인이 지급하는 거액의 급여와 배당소득을 해외계좌로 몰래 받아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했다. 또 싱가포르 현지법인과 B씨의 매제가 운영하는 개인업체 간 가공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뒤 사적으로 사용했다. 국세청은 B씨 소유 국내 법인에 대해 법인세 등 71억원을 추징하고 해외금융계좌 미신고 과태료 11억4,000만원을 부과했다.
화학제품 수입중개업체의 사주 C씨는 해외거래처에서 받을 중개수수료를 스위스에 개설한 은행계좌와 국내계좌로 나눠서 수취했다. C씨는 이 같은 방식으로 법인세 신고를 일부 누락했다. C씨는 또 스위스 계좌에 은닉한 자금으로 해외 고가부동산을 취득하고 해외금융계좌 신고도 이행하지 않았다.
금융투자업을 하는 D씨는 홍콩의 법인설립 대행회사를 통해 BVI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D씨가 소유한 회사는 이 페이퍼컴퍼니에 수억 원을 송금하고 국내외 금융상품에 우회 투자해 상당한 투자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D씨는 투자수익을 홍콩 등 해외계좌에 은닉하고 해외금융계좌신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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