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일기가 국가기록유산으로 쓰인다면 더 이상 기쁨이 없겠습니다"
전남 강진군이 29일 "김오동(76ㆍ강진군 성전면ㆍ사진) 옹이 37년간 써온 소중한 일기장을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에 기증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김 옹은 생활고로 초등학교를 중퇴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일기를 쓰면서 한글을 깨우치고 하루를 되새기는 일을 37년간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김씨 일기장에는 날씨는 물론 농사일, 당시 신문과 방송 뉴스에 보도된 주요 사건, 가족과 친지의 경조사, 축ㆍ부의금 액수, 곡물 수매가격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강진의 축ㆍ부의금 변천사는 매우 흥미롭다. 1977년 결혼 축의금은 2,000원, 조문금은 3,000원이었으나 80년대 들어서 축의금과 조의금이 5,000원을 냈다.
88년부터 축ㆍ부의금이 1만원대로 상향 조정됐고 91년에는 2만원 수준이었다. 96년에 처음으로 3만원으로, 2000년대 들어서 종종 5만원도 있지만 3만원이 대부분이다.
80년 5월 22일 일기에는 날씨는 맑고 논에 쟁기길을 했으며 광주에서 데모사건이 발생돼 수십여명이 죽었다. 국민 부모 아들 딸들이 억울하게 사망했으며 "게엄사령관 물려가라, 김대중 석방하라" 등의 구호가 적혀있다.
김씨가 그 동안 소장한 쓴 일기장은 400페이지 분량의 노트 24권이다.
그의 메모하는 습관 덕에 주변 마을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 일을 확인할 때마다 김씨에게 문의하곤 한다. 그야말로 마을의 기억 창고 역할을 톡톡히 해 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여곡절도 있었다. 20세 때부터 쓰기 시작한 그의 일기 중 18년 동안의 일기는 1975년 불의의 사고로 소실됐다. 마을의 이집 저집 농사일을 하려 다니면서 김씨가 기록했던 농사일과 마을 사건 기록 등이 피치 못할 사연으로 불에 타고 말았다.
김 씨는"단 하루도 일기를 빼먹지 않았다"며"못 배운 것이 한이 돼 일기를 쓰게 됐지만 이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강진군 박경석 기록연구사는"김씨의 일기는 시골 농부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 현대사의 변화 모습과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기초 자료이다"며"개인의 기록이 사장되지 않고 영구히 보존될 수 있도록 민간 기록물 수집을 지속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김씨의 일기장은 국가기록원 심의를 거쳐 다음달 기증 여부가 결정된다. 기증이 확정되면 최첨단 기록물 보존 및 복원처리시설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되며, 학술연구와 교육, 전시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한편 현재 국가기록원에 수집된 민간기록은 총168,993점이다.
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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