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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사진첩서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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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사진첩서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풍경들

입력
2013.05.2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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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단다. "와~" 소리 날 도시의 야경도, "악!" 소리 나는 놀이동산도, "짱!" 소리 날 대형 쇼핑몰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 그런 나라가 바로 라오스란다. 그런데 왜 뉴욕타임스는 이곳을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위로 꼽았을까.

라오스를 여행하고 온 사람들은 두 부류로 갈린다. "그냥 좋았다"는 사람과 "그냥 더웠다"는 사람. 나는, 그냥 좋았다. 뭐가 그렇게 좋았느냐고 누가 꼬치꼬치 묻는다면, "추운 겨울에 한 장씩 꺼내 보고 싶은 풍경을 담아왔다"고 대답할 것이다.

방비엥의 아침,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예정에 없었지만 아침 7시에 방비엥 시내로 나갔다. 오토바이에 좌석을 이어 붙인 툭툭의 트럭 버전인 썽테우에 올랐다. 태양이 잠시 졸고 있는 아침, 신선한 맞바람이 전날의 열기에 익은 얼굴을 기분 좋게 스친다. 차는 8시인 등교 시간 보다 이르게 집을 나선 학생들의 자전거 무리를 조심조심 지나친다. 무릎 아래로 둘러 입는 전통 치마 씬을 입은 소녀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자전거를 탄다. 이방인의 시선에는 관심 없는 듯 긴 생머리를 날리며 앞만 보고 있다가, 스쳐 지나기 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결국 눈을 맞춘다.

이곳의 학생들은 하루에 두 번씩 학교에 간다. 11시가 되면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라오스에서 급식을 줄 형편이 되는 학교는 거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의 얼굴은 한국의 그것보다 몇 배나 환하다. 가난하지만 아무도 비루하지 않은 것은 단지 공산주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방비엥 시내는 어제의 밤과는 사뭇 다르다. 이곳의 소박한 네온사인은 저녁 7시에 켜져 밤 10시면 잠이 든다. 술 취한 여행자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까만 어둠이 긴 잠의 이불을 편다. 오전 7시 20분, 인간의 빛이 미쳐 다 보여주지 못했던 낮은 건물들이 기지개를 켜며 "싸바이 디"하고 인사한다. 짧았던 밤 장사가 아쉽다는 듯 상점의 아침 풍경은 일찍 시작된다.

썽테우에서 내려 뒤를 보니 어둠에 가려있던 산들이 바로 앞에 병풍처럼 둘러있다. 해발 800m에 서 있음을 증명하듯 산허리께에 구름의 옷을 입었다. 한국의 뭉툭 산과도 중국의 뾰족 산과도 다르다. 둘을 합친 것 같은 풍경은 그 아래 품고 있는 잔잔한 쏭강과 사람들처럼 순진무구한 느낌이다.

잠깐 망설이다 오토바이를 빌려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4만낍에 8시간을 빌려준다. 3달러가 채 되지 않는 돈이다. 그래도 절반이 못되게 채워놓은 기름 값 1만낍은 왠지 아깝다. 시동을 켜니 엔진이 '부르르릉'이 아니라 '뿌따따따' 소리를 낸다. 시골길에 어울리는 놈이다. 라오스는 헬멧 착용에 대해 인접한 태국이나 베트남보다 엄격하다. 그리고 오토바이 뒤에 탄 여성은 남자의 허리를 감싸지 않는다. 이유를 물으니 그냥 아직 "보수적이어서"란다.

아스팔트길은 짧다. 시내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흙길, 자갈길이다. 쏭강을 가로지른 철골 다리 바닥은 나무 합판으로 얼기설기 못질이 되어있지만 무시 말라는 듯 오토바이 통행료 1만낍을 받는다. 사람은 5,000낍, 자전거는 7,000낍. 차량은 지날 수 없다. 다리를 지나 좌회전 한번뿐 길은 일자로 쭉 뻗어있지만 속도를 즐길 수 있는 길은 아니다. 현지인들도 웬만해선 시속 40㎞를 넘기지 않는다. 좌우로 드넓게 펼쳐진 풀밭 곳곳에서 소 무리가 풀을 뜯고 있다. 멀리 보니 대나무로 엮어 지은 농가 축사에서 소 한 무리가 나와 도로를 가로 지른다. 송아지 한 마리가 멈춰서더니 뒤를 돌아보며 어미를 부른다. 음메~. 라오스 길 위의 소는 빨간불 신호등이다.

오렌지색 스님과 초콜릿색 아이들을 지나 자갈길에 엉덩이가 아파질 즈음 파파야 씨같이 뭉게뭉게 먹구름이 몰려온다. 스콜이다. 다행히 번개는 치지 않는다. 5월에 시작되는 우기는 10월까지 계속된다. 우기의 시작과 끝에 하늘은 변덕스럽다. 다음해 4월까지 건기인데 12월과 1월에는 영상 8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며 추위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곳 오토바이는 기름통이 작다. 길가의 무허가 주유소에서 1만5,000낍에 1리터의 기름을 채우자 게이지 바늘이 수직이다. 다시 해가 나고 뜨거운 햇살이 등에 꽂힌다. 길 끝까지 달리려던 당찬 계획은 끝이 없는 길에 좌절되고, 손에 닿을 듯했던 산들은 신기루처럼 여전히 멀기만 하다. 두 시간을 채 못 달렸으니 욕심이었던 게다. 적게 보았지만 많이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에 감사해야 할 때이다.

이곳에 다시 온다면 그땐 같은 길을 걷고 싶다. 라오스의 시간은 시계보다 천천히 돌기 때문이다. 떠남이 아닌 여행의 끝은 귀환. 일행이 기다리는 시내로 핸들을 돌렸을 때 등 뒤의 풍경보다 더 보고픈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 돌아오는 길, 지나온 풍경인데 또 다른 건 아마도 두고 온 것이 달라서일까.

루앙프라방 꽝시 폭포

나이도 성별도 상관없다. 차례차례 푸웅~덩 하늘을 향해 올랐다가 하늘로 떨어진다. 모두가 타잔이다. 체력이 다할 때까지 줄이 끊어지기 전까지!

입장료 2만낍. 여행까지 와서 등산인가. 더위에 오르막에 숨이 찬다. 라오스다운 소박한 곰 사육장을 지나 20여분을 올랐다. 짜증이 밀려 올 때쯤 어디선가 '첨벙' 소리. 오아시스를 귀로 찾은 듯 발걸음이 빨라진다. 처음 보는 물이다. 쪽빛 물결에 흰색 물감을 풀었을까. 울창한 숲 속 계곡을 타고 석회암을 갉아먹은 옥색 폭포수가 내려온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질뻔하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는 에덴동산이 펼쳐진다. "비키니를 입은 유럽 미녀들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리는 없다"라고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진 않았지만.

물을 향해 수평으로 자란 나무에 견고하게 매달린 밧줄, 자연이 만들어준 최고의 놀이동산이다. 약간의 수영 실력과 눈치 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동심만 있다면 누구나 타잔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멋진 다이빙은 쉽지 않다. 금발 미녀의 코믹한 입수에 웃음이 터진다. 다음, 줄을 잡은 남자친구의 표정은 비장하다. 그럴듯한 자세에 모두 멋진 다이빙을 기대한다. 허공에서 한 바뀌 돌았지만 엉덩이로 입수. 백발의 중년 아저씨도, 배 나온 아줌마도, 함께 온 꼬마도 여기선 모두가 어설픈 타잔이다.

마냥 보아도 즐거울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오르니, 하늘에서 들이붓는 듯 떨어지는 꽝시폭포가 동공을 가득 채운다. 웅장함에 잠시 넋을 잃는다. 물길을 가로지른 다리 위에서 감상할 수도 있지만 곁길로 다가가 '폭포 에어컨'에 땀을 식혀도 좋다. 다리를 지나 등산로를 오르다보면 폭포 중간 지점으로 가는 샛길이 있다. 그 길을 찾기 위해 '껄덕고개'를 오른다. 10여분을 올랐을까 길을 잃은 느낌이다. 내친김에 계속 오르니 폭포의 맨 위에 다다른다. 떨어지기 전의 폭포수는 신비롭게 고요하다. 이 나라를 굽이치는 모든 강의 시작이 아마도 이럴 것이다.

방비엥ㆍ루앙프라방(라오스)=글ㆍ사진 김승균기자 libra@hk.co.kr

여행수첩●현재 주3회(화,목,토) 인천-비엔티안 직항 노선을 운항 중인 라오스항공이 7월 15일부터 매일 라오스로 가는 비행기를 띄운다. 인천-비엔티안 노선엔 기령 1년 6개월 미만의 신형 항공기가 이용되며 인천에서 비엔티안까지는 5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주7회 운항을 기념해 6월 15일까지 약 22만원(공항세ㆍ유류할증료 제외)의 특가에 왕복 항공권을 판매한다.(02)3708-8561 ●여행자의 천국으로 불리는 방비엥은 비엔티안에서 북쪽으로 5시간 3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한다. 탐남 수중동굴 탐험, 탐쌍 코끼리 동굴 카야킹, 에메랄드 물빛의 탐푸캄 블루라군 등 자연과 함께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메콩강의 지류인 쏭강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튜빙과 카야킹을 즐길 수도 있다. ●라오스는 연중 고온다습하다. 5월부터 9월까지 우기,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비교적 건조하다.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 늦다. 환폐단위는 낍으로 1달러 7,600낍 정도. 전압은 220볼트로 한국에서 쓰는 전자제품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고급호텔보다 배낭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가 발달돼 있는 편이다. (02)3708-8510

김승균기자 lib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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