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소에 또다시 불량 부품이 쓰였다. 검사업체 직원 하나가 시험데이터를 조작했는데 이를 잡아 내야 할 감리업체도, 원전측도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 결과 안전에 필수적인 핵심부품이 성능조작상태로 최신형 원전에 들어갔고, 관련제보가 없었다면 대형사고의 위험을 안은 채 이 부품은 계속 작동했을 것이다. 원전검사, 검수, 운영의 모든 과정에 심각한 구멍이 뚫렸다는 얘기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28일 일부 원전에 설치된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사실이 확인돼, 신고리2호기와 신월성1호기의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고 밝혔다.
제어케이블은 원전사고 발생 시 원자로 냉각과 원자로 건물의 압력을 줄이고, 방사선 비상사태가 벌어질 경우 외부격리 기능 등을 담당하는 안전설비에 동작신호를 전달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은철 원안위원장은 "해당 (불량) 제어케이블은 비상 시 핵연료 냉각, 외부로의 방사성 물질 차단 등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됐다"며 "케이블 교체와 안전성 점검 등 조치에 최소 6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험성적서 위조는 부품검증을 맡은 국내 시험기관의 한 직원에 의해 저질러졌다. 그는 제어케이블 성능시험 일부를 캐나다 기관에 의뢰했는데, 안전등급 요구기준을 통과할 만한 수치가 나오지 않자 데이터를 위ㆍ변조해 마치 정상부품인 것처럼 속여 원전에 사용되도록 한 것이다. 신고리 1ㆍ2호기와 신월성 1ㆍ2호기의 경우 시험 그래프와 시험결과가 위조됐고, 현재 건설중인 신고리 3ㆍ4호기는 시험그래프 등 시험성적표 일부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1차 검수ㆍ감리책임이 있는 한국전력기술과, 원전운영주체이자 포괄적 관리책임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시험성적 보고서를 그대로 믿어버렸다는 점. 검사기관부터 감리기관, 운영기관에 이르기까지 원전 부품의 안전 및 검증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된 셈이다. 원안위 관계자는 "시험기관 직원 한 명이 데이터를 조작할 수 있는 것도 문제이고 이런 것을 감리ㆍ검증해야 할 기관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넘어갔다는 것도 문제"라며 "그나마 관계자 제보 때문에 뒤늦게나마 적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행 검증 체계 하에선 양심선언이나 제보가 없다면 적발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부품검증 시스템에 치명적 허술함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원전운영기관으로서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공신력이 있는 시험기관이 발행한 시험성적표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00만㎾급 최신형 원전 2기가 6개월 이상 멈춰 서게 됨에 따라 여름철 전력수급에도 비상이 걸리게 됐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관련 보고를 받고 "확실한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투명하게 밝히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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