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서울 필동 일본인 골동품상 마에다 집. 고려청자를 놓고 마에다와 간송 전형필 사이에 긴박한 흥정이 오갔다. "2만 원은 주셔야 합니다." 당시 쌀 1가마가 16원, 좋은 기와집 한 채가 1,000원이던 시절이다. 마에다는 조선인이 이만한 값을 치를 배짱이 있겠느냐는 듯 빙그레 웃었다. 잠시 고민하던 간송은 흔쾌히 거금을 건넸다. 12세기 최고의 청자로 꼽히는 청자상감구름학무늬매병(국보 68호)은 지금 돈으로 수십억 원을 주고서야 간송의 손에 들어올 수 있었다.
▲ 문화재청은 2009년 문화재 가격을 매긴 이색적인 보고서를 발간했다. 선진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조건부 가치측정법(CVM)'이 동원됐다. 남녀 5,900명에게 문화재 별로 매년 얼마의 세금을 낼 수 있는지를 물어 계량화했다. 일부 문화재를 골라 실시한 조사에서 울주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가 4,926억 원으로 가장 높았고, 정이품송 4,152억 원, 종묘제례악 3,184억 원, 창덕궁 3,097억 원, 팔만대장경 3,080억 원 순이었다.
▲ 문화재 중 최고의 명품인 국보의 가격을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보험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론해 볼 수는 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신라특별전을 열겠다며 국보 등 94건의 문화재 대여를 요청해와 보험가를 결정했다. 그 결과 금동반가사유상(국보 83호)이 500억 원으로 역대 최고가가 나왔다. 1993년 산정한 보험가액은 300억 원으로 200억 원이 오른 셈이다. 황남대총 북분 금관(국보 191호)은 100억 원으로 결정됐다.
▲ 이번에 책정되지는 않았지만 두 번째 보험가는 국보 83호와 쌍벽을 이루는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이다. 98년 메트로폴리탄 특별전에 출품할 때 300억 원짜리 보험에 가입했는데 지금은 83호와 거의 비슷한 액수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장이 83호의 잦은 국외 반출이 논란이 되자 이번 뉴욕전시회에 대타로 78호를 가져나가라고 제동을 걸었다. 두 국보간에 가치의 차이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인 듯싶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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