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사데크 헤다야트(1903~1951ㆍ사진)의 장편소설 가 두 출판사에서 동시에 번역, 출간됐다. 한국에 거의 소개된 바 없는 이란 문학작품을 두 출판사가, 그것도 한날 한시에 선보이는 기이한 우연이 빚어진 것이다. 소설가 배수아씨가 독일어본을 번역한 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전문 번역가 공경희씨가 영어에서 우리말로 옮긴 는 신생출판사인 연금술사에서 나왔다. 두 책 모두 1937년 페르시아어로 씌어진 작품을 중역한 것이다. 배씨는 지난달 펴낸 장편소설 의 주요 모티프로 이 작품을 활용하기도 했다.
염세주의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는 는 '한국인만 모르는 세계 걸작선'의 범주에 들 만한 책이다. 작가는 유구한 이란의 문화적 전통에 서구의 문학기법을 접목한 이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인간 존재의 부조리와 시대의 억압을 어둡고도 아름다운 상징의 언어로 그려낸 이 초현실주의 소설은 작품은 전 세계 25개국에 번역, 소개됐다. 그러나 잔혹성과 풍속 저해를 이유로 정작 이란에서는 출간 80년이 넘은 현재까지 금서로 지정된 책이다.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문지 번역본)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시종 죽음에의 충동이라는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내면 풍경을 탐색한다. 필통 뚜껑에 장식용 그림을 그리는 무명화가 '나'는 어느 날 창고의 벽 틈새로 검은 옷을 입은 소녀가 강가의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앉은 노인에게 메꽃을 건네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한다. 이 모습은 '나'의 영혼을 격렬하게 뒤흔들고, '나'는 소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몽유병자처럼 불현듯 나타나 '나'의 집으로 들어가고, '내' 침대에서 그대로 죽어버린다. '나'는 소녀의 시체를 절단해 가방에 넣어 교외에 묻고, 이후 삶의 무의미 속으로 추락해 들어간다.
아편과 술에 취한 '나'가 환각의 삶에서 겪게 되는 고독과 고통, 슬픔으로 이어지는 소설은 죽음의 문장들로 가득하다. '죽음은 삶의 심연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자신의 품에 거두어주는 존재이다', '이 세계는 텅 빈 슬픔의 집이었다. 나는 맨발로 슬픔의 집의 모든 방을 하나하나 돌아다니는 사람처럼 가슴 속에 불안과 근심이 가득했다', '이 세상은 나에게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었다' 등등. 이 작품이 이제껏 금서에서 해제되지 못한 데는 책을 읽고 자살한 사람이 속출해 이후 "읽으면 자살하게 된다"는 속설이 생겨난 것도 한 원인이다.
이란의 카프카로 불리는 사데크 헤다야트는 테헤란의 귀족 출신으로 일찍이 유럽식 교육을 받았다. 왕정과 독재에 반대, 진보적 예술가들의 모임 '라바(사인조)'를 결성했다가 정치적으로 탄압받았으며, 억압적 현실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좌절감으로 염세주의에 빠져 술과 마약에 의존해 살았다. 첫 자살 시도 후 24년이 지난 1951년, 프랑스 파리에서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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