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 때 봄소풍을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점점 여름이 빨라지는 중이니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80년대에는 지금만큼 덥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도 땡볕 아래를 걷는 일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그 시절 소풍이란 몇 백 명의 아이들이 근교 유원지까지 한 시간 가량 걸어가서 반 대항 게임을 하거나 보물찾기를 하는 것이었다. 싸들고 간 김밥은 쉬어터지기 일쑤였고, 돌아오는 길에는 다들 녹초가 되었다. 픽픽 쓰러지는 아이들도 두셋은 꼭 있었다.
소풍 전날이 되면 나는 두 개의 마음이 왔다 갔다 하곤 했다. 날이 화창하여 예정대로 학교를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 한쪽. 어둑한 교실에 앉아 찬합에 가득 든 김밥이나 까먹을 수 있게 비가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한쪽. 학년이 올라갈수록 마음은 당연히 비 오는 하루 쪽으로 기울었다.
한창 뜨겁던 지난 주 어느 날, 겨우 20여분을 걷고 더위에 지쳐버려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다. “어머, 나도 그랬는데.” 친구가 맞장구를 치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햇빛이 쨍 하면 쨍한 대로 좋았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좋았어.” “나는 햇빛이 쨍하면 쨍한 대로 실망했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실망했는데.” 친구는 어깨를 으쓱했다. “같은 마음에 다른 색을 칠한 거지 뭐. 그 색깔도…” 뒷말은 내가 가로챘다. “그 색깔도 좋고 이 색깔도 좋다고 하려 했지?” 친구가 하하 웃으며 어떻게 알았냐고 했다. 어떻게 알았냐면, 그게 널 좋아하는 이유니까.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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