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에서 자취를 하는 대학생 최모(24)씨는 6개월 전부터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상담을 받고 있다. 우울증세가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씨의 증세는 1년 전 기숙사에서 학교 인근 고시원으로 옮기면서 심해졌다. 최씨는 "창문이 없는 고시원 방으로 옮긴 다음부터 방에만 들어가면 괜히 울적해지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며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식사도 거르고 하루 종일 방에 누워있을 만큼 우울증이 극에 달했다"고 털어놓았다.
최씨가 1년 정도 지냈던 고시원 방은 3평(9.9㎡) 남짓으로, 침대와 작은 책상, 미니 냉장고가 들어가면 어른 한 사람이 앉아 있기에도 버거웠다. 최씨는 겨우 다리를 뻗을 수 있는 작은 침대에서 잠을 청하다가도 주변 소음에 잠을 깨는 것이 예사였다. 최씨가 지불한 월세는 25만원. 최씨는 "창문이 없어 다른 방에 비해 3만원이 저렴했지만 밤인지 낮인지 모를 만큼 늘 어두웠다"고 설명했다.
대학생들의 주거난에 자취 학생들의 마음까지 병들고 있다. 경제적 여건이 안돼 최소한의 주거생활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좁은 원룸이나 고시원, 쪽방 등에서 지낼 수밖에 없어 우울증을 호소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서울 YMCA가 지난해 전월세, 하숙, 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전국 대학생 5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생 주거 실태 조사에 따르면 43%가 최저주거면적인 14㎡(4평) 이하의 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 10명 중 4명은 최소 주거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한 고시원, 원룸 등을 전전하는 셈이다.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 사는 취업준비생 이은정(25)씨도 8.25㎡(2.5평)짜리 원룸텔에서 자취를 시작하며 부쩍 우울감을 느낄 때가 많아졌다. 대학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취업 준비중인 이씨는 "생활비 부담 때문에 잠자리만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원래 지내던 원룸보다 저렴한 곳으로 옮겼는데 방에 들어갈 때마다 기운이 없어 멍한 상태로 지낼 때가 많다"며 "학업과 취업 스트레스까지 겹쳐 견디기 힘들지만 딱히 대안이 없다"고 토로했다.
권지웅 대학생주거권네트워크 대표는 "학생들이 대학가 주변의 비싼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다 보니 쪽방 등으로 몰릴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며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면 아무리 건강한 청년이라도 가벼운 우울증은 예사이고, 소화불량, 무기력증 등 이른바 자취병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의원 원장은 "좁은 공간에 산다고 무조건 우울증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햇빛이 들지 않는 폐쇄적인 환경은 우울증을 일으키는 위험 요소"라면서 "대학생들의 경우 경제난, 취업난 등과 맞물리면서 무기력증이나 우울감이 심화돼 만성 우울증으로 발전하거나 은둔형 외톨이가 될 위험성도 있다"고 말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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