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대회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재미동포 아이린 조 제치고올 시즌 한국인 5번 째 우승컵동갑내기 신지애·박인비에 가려떠밀리듯 2010년 미국행성적 안 나 한때 국내 복귀 타진작년에야 후원사 만나 안정 찾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우승 경험도 없던 이일희(25ㆍ볼빅)에게 최고의 무대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정상은 더 힘들었다. 태극 낭자들이 잇달아 낭보를 전해오는 사이, 골프 팬들의 기억에서 지워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일희는 포기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악바리 근성으로 버텼다.
골프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이일희가 프로데뷔 7년, 2010년 LPGA 투어 진출 이후 4시즌 만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일희는 27일(한국시간) 바하마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의 오션클럽 골프장에서 열린 LPGA 투어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 마지막 날 12개홀로 치러진 3라운드에서 버디로만 5타를 줄여 합계 11언더파 126타를 적어냈다. 이로써 2위를 차지한 재미동포 아이린 조(29ㆍ9언더파 128타)를 2타 차로 제치고 생애 첫 LPGA 투어 정상에 올랐다. 올해 창설된 이 대회 우승 상금은 19만5,000달러(약 2억1,600만원).
이일희는 1988년 용띠 동갑으로 코리안 낭자 군단의 주축을 이루는 박인비(25ㆍKB금융그룹), 신지애(25ㆍ미래에셋)에 가려 출전하는 대회마다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나무랄 데 없는 스윙 자세와 샷 실력을 겸비했으나 결정적인 순간 주저 앉는 바람에 2008년 우리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2009년 MBC 투어 제2회 롯데마트 오픈 등 국내 투어 대회에서 준우승만 두 차례 차지했다.
2009년 퀄리파잉스쿨에서 20위에 오른 이일희는 2010년부터 LPGA 대회에 출전했지만 2년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밑바닥까지 추락한 2012년 이일희의 골프 인생에 새로운 전기가 열렸다. 지난해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공동 4위에 오르고,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공동 9위를 차지했다. 지난 6일 끝난 킹스밀 챔피언십에서는 10언더파로 공동 3위까지 순위를 끌어 올려 자신감을 얻었고, 마침내 올 시즌 한국 선수의 5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앞서 신지애(ISPS 한다호주여자오픈), 박인비(혼다타일랜드, 크래프트나비스코챔피언십, 노스텍사스 슛아웃)가 정상에 올랐다.
국내ㆍ국외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이 없었던 이일희의 우승을 점친 전문가들은 없었다. 한국은 이번 신데렐라의 탄생으로 올 시즌 치러진 11개의 LPGA 대회에서 5번이나 정상에 등극했다.
이번 대회는 폭우로 골프장이 잠기는 바람에 36홀 경기로 축소됐다. 2라운드에서 파45로 치러졌던 경기가 최종 라운드에서는 다시 변동이 생겼다. 물에 잠겨 있던 18번홀(파5)에 물이 빠져 정상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18번홀로 4번홀(파3)을 대체해 마지막 라운드는 파47로 진행됐다.
폭우는 그쳤지만 강풍이 몰아쳐 선두권 선수들이 고전했다. 그러나 이일희의 샷만은 초반부터 불을 뿜었다. 첫 번째 홀부터 버디를 기록했고 두 번째 홀(파4)에서도 칩인 버디를 잡았다. 기세를 모아 세 번째 홀(파5) 역시 2.5m 거리에서 가볍게 버디퍼트를 성공시켰다. 또 여덟 번째 홀(파4)에서도 버디를 추가, 단독 선두로 나서며 첫 우승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위기도 있었다.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가던 중 11번째홀(파4)에서 고비를 맞았다. 이일희는 티샷을 페어웨이로 잘 보냈지만 두 번째 샷이 그린 위에 올라갔다가 백스핀을 먹고 그린 밖으로 굴러 내려왔다. 게다가 어프로치샷도 다소 짧아 홀까지 1.2m의 거리를 남겨 놓게 됐다.
하지만 침착했다. 과감하게 코스를 공략했다. 생애 첫 우승을 눈앞에 두고 필요한 건 자신감이었다. 결국 이일희는 짜릿한 파퍼트를 집어넣은 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후 마지막홀(파5)에서도 러프에서 친 두 번째 샷을 그린 위에 올린 뒤 가볍게 버디를 잡아낸 이일희는 극적인 드라마를 완성했다.
세계랭킹 1위 박인비(25ㆍKB금융그룹)는 공동 107위(4오버파 141타)에 머물러 공동 61위까지 주는 상금을 받지 못했지만 시즌 상금 랭킹 1위(87만7,700달러)를 지켰다. 전날까지 공동 3위였던 지은희(27·한화)는 7타를 잃고 공동 61위(이븐파 137타)로 떨어졌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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