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인터넷언론 ‘뉴스타파’가 27일 2차로 공개한 조세피난처 관련 재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기업 구조조정이나 부동산 신탁 과정에서 비정상적 방법으로 세금을 탈루했을 가능성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2차 명단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최은영(51) 한진해운 회장. 이날 발표된 명단 중 유일한 재벌오너이기도 하다. 남편인 고 조수호 회장 사망 후 2008년 1월 회장에 취임했다.
최 회장은 취임 몇 달 후인 2008년10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와이드 게이트 그룹’이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고, 두 달 뒤 발행주식 5만주 가운데 90%(4만5,000주)를 취득했다. 나머지 5,000주는 당시 전무였던 조용민(54) 전 한진해운 홀딩스 대표이사가 보유했다. 조 전 대표는 이 회사에도 등기이사로 올라 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최 회장이 조 전 대표와 공동명의로 서류상 회사를 설립한 것은 맞지만 더 이상 필요가 없어 2011년11월 주주명부에서도 삭제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회장이 이 회사를 왜 설립했는지, 또 왜 정리했는지는 명확히 해명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최 회장이 페이퍼컴퍼니를 정리한 시기는 조 전 대표가 회사를 떠난 시점과 일치한다. 조 전 대표는 고 조수호 회장의 오랜 측근이자, 사내 대표적 재무ㆍ전략통이었다는 게 회사주변의 평가. 한진해운은 법적으론 한진그룹에 속해있지만, 사실상 독립적으로 최 회장이 이끌고 있다. 때문에 회사 분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탈세 목적으로 유령회사를 만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뉴스타파 측은 “재벌그룹의 자금담당이 만든 페이퍼컴퍼니인 만큼 상당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황용득(59) 한화역사 사장은 부동산신탁을 통해 자산을 숨겨놓은 경우. 96년2월 한화 도쿄지사 투자담당이었던 황 사장은 쿡 아일랜드에 ‘파이브 스타 아쿠 트러스트’란 페이퍼컴퍼니를 차리고 그 해 3월과 97년 8월 각각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위치한 아파트 두 채를 잇따라 사들인 다음 5년 뒤인 2002년6월 한화그룹 일본법인(한화재팬)에 매각했다.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대행한 회사의 팩스 교신엔 황 사장이 235만494달러에 아파트를 팔았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아파트 구입 당시 황 사장은 일개 30대 직원이었던 만큼, 회사의 해외금전거래에 본인이름을 빌려줬을 공산이 크다. 한화 관계자도 “당시만 해도 해외부동산 취득에 제약이 많아 (황 사장을 내세운 것처럼) 명의신탁 방법을 관행적으로 이용하곤 했다”고 해명했다.
조민호(69) 전 SK케미칼 부회장은 96년1월 버진아일랜드에 자신을 등기이사로, 익명의 인물(Bearer1) 1명을 주주로 내세워 ‘크로스브룩 인코퍼레이션’이란 회사를 만들었다. 이 회사의 서류상 발행주식은 단 1주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조 전 부회장의 부인인 김영혜씨에게 2003년 10월 승계됐다. SK 관계자는 “조 전 부회장이 싱가포르에 있는 지인의 제안으로 개인 차원에서 회사를 운영하려 했으나 잘 안된 것으로 안다. 회사와는 전혀 무관한 개인투자”라고 잘라 말했지만, 아무리 재테크에 뛰어난 개인이라도 17년전에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까지 만들어 자기 돈을 굴렸다는 것 자체가 일반상식과는 거리가 있다.
이덕규(62) 전 대우인터내셔널 전무는 특수사업본부장(상무) 시절인 2005년 7월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 ‘콘투어 퍼시픽’을 세우고, 단독등기이사 겸 주주로 등록했다. 이 전 전무는 뉴스타파에 “종합상사 특성상 그런 구좌도 만들 수 있고, 실적에 쫓기다 보면 편법을 안 쓸 수도 없다”며 사실상 회사 차원의 행동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우인터내셔널 측은 “회사 주도로 법인을 설립하기는커녕 조세피난처 쪽과 거래한 내역도 없다”고 반박했다.
유춘식(69) 전 대우 폴란드차 사장도 2007년 버진 아일랜드에 ‘선 웨이브 매니지먼트’를 만들고, 8명의 주주 가운데 1명으로 등재됐다. 유 전 사장은 “벤처캐피탈 사업을 위해 개인적으로 6만달러를 투자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는 전혀 알 수 없어 전형적인 역외 탈세전략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김이삭기자 hiro@hk.co.kr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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