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8일 부산의 고은미술관에서 열린 사진전의 개막행사에서, 백발의 노신사는 "죄송하다"는 말로 인사를 마쳤다. 그는 1980년 5월 중앙일보 기자로서 광주에서 사진을 찍었었다. 그날의 금남로·충장로에서 만나 그의 프레임에 넣었던, 광주의 눈빛 형형한 젊은 사람들은 거의 죽었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무릅쓰고 찍은 사진들은 신문에 실을 수 없었다. 평생 부채감을 안고 살던 그는 28년 만에 사진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었다. 그럼에도 이창성 기자는 33년을 맞는 이 자리에서 또 다시 사과한 것이다. 당시 사진기자로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또 다른 사진기자 나경택은 아주 오래된 작은 라이카 사진기를 목에 매고 행사에 참여했다. 1980년 광주에서 그가 찍었던 사진들이 바로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비교적 우리가 많이 봐온 바로 그 사진들이다. 최근에 심지어 '벌레'라 불리는 어떤 젊은이들에 의해 입에 올리기도 힘든 모욕을 받은 바로 그 사진들이다. 그 모욕에 관한 사실을 누군가 이야기해주자 당시 전남매일 기자였던 그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한 사람은 전혀 다른 목적으로 5·18의 거리와 사람들 사진을 찍었었다그는 육군정보사령부의 요원으로서 광주에 투입되어, 근래 문제가 된 바로 그 문제, 북한(군)이 광주에 개입하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폭도'들의 배후에는 북의 흔적이 전혀 없었고, 그는 이틀만에 찍은 사진들을 들고 광주 외곽의 정보사령부 임시 기지로 철수했다 한다. 그 정보사요원의 이름은 이상일. 광주의 체험 때문에 사진가가 되었고, 평생 광주를 찍었고, '망월동 시리즈'가 일본에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같이 역사적인 기록사진을 한 자리에 모으고, 또 오늘날의 시각으로 광주를 재해석한 젊은 예술 사진가들이 함께 한 사진전이라면 분명 의미가 큰 행사일 것이다. '그날의 훌라-송'이라는 제목을 단 이 최초의 사진전이 부산에서 열렸다는 것도 아주 뜻 깊다.
이 사진전은 5·18 광주를 기억하는 하나의 새로운 전범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5·18 광주는 단지 그것을 겪은 지역과 세대의 '피해 경험'이어서는 안 되고, 보다 보편적인 민주주의의 힘이나 민중주권의 경험으로서 재인식되고 세대를 넘어 전승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5월에 재확인했듯 33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광주는 뜨거운 상징이자 상쟁의 장소이다. 올해에는 특히 '일베'와 종편의 역사 왜곡과 반인륜적인 공격 때문에 공론장이 시끄러웠다. 우리는 한 세대가 지난 오래된 트라우마와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고 또 그것을 다음 세대가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역사학자 전진성의 말대로 역사에는 분명 '망각'도 필요한데, 제대로 된 '망각'의 가능성은 '처벌' 등의 적절한 청산을 통해서만 마련된다. 거짓된 화해나 정치적이고 미봉적인 청산은, 치유는커녕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되는 트라우마를 남길 뿐이다. 5·18 광주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러한 듯하다.
그 위에서 새로운 상처도 덧나고 짓무른다. 바로 일베 같은 현상이 그 증거이다. 일베는 아직은 어떤 징후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혐오감이 표현되고 행동화하는 이런 일은 '민주화'의 실패나 민주주의의 허약함에 근거한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 혁명이 가진 아래로부터의 본래적 가능성이 차단되었을 때, 그 에너지는 엉뚱한 방향으로 분출된다. 이는 나치나 사회주의 붕괴 이후 동구 애국주의의 출현을 위시한, 근대 이후의 세계 전체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물론 그 뒤에는 한 사회의 특권층과 공안세력이 도사리고 앉아 이익을 취한다.
33년이 지난 지금, 광주에 대한 기억과 해석은 다른 세대의 주체와 매체에 의해 다시 상상되고 구성되고 있다.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다시, 새롭고 신선한 방법으로 민주주의와 역사를 가르치고 말할 것인가가 우리의 미래가 달린 듯하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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