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4주기다. 고인이 잠들어 있는 봉하마을에서 4주기 추념식이 열렸다. 길 입구부터 노란색 일색이다. 수천 개의 노란색 바람개비가 화창한 날씨 덕분에 더욱 현란하다. 그날 하루 봉하마을을 찾은 1만여 참배객들 대부분이 노란 캡과 노란색 조끼를 입고 가신님을 기렸다. 2002년 12월 노무현의 당선을 축하하던 노란풍선을 추억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노란색이 노무현 정신을 상징했을까? 유교문화권에서 노란색은 전통적으로 황제의 색이다. 때문에 노란색 즉 황색(黃色)은 황제 외에는 함부로 쓸 수 없는 색이다. 물론 서양에서는 다르다. 황색(yellow)은 위협과 폄하의 색이다. 어찌됐든 우리나라에서 노란색은 그다지 인기 있는 색깔이 아니었다.
노란색을 처음 상징색깔로 활용한 정치인은 다름 아닌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1987년 13대 대선에 출마한 DJ는 평민당의 색깔로 노란색을 선택했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 해 전인 1986년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가 '민중의 힘'에 의해 축출될 때, 민중의 힘을 상징했던 것이 바로 '노란색'과 자유를 뜻하는 'L'자였다.
하지만 DJ가 집권에 성공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다. 평민당의 이름도 새정치국민회의로 바꾸고, 당의 로고도 녹색과 청색으로 바꿨다. 5․16쿠데타의 주역인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와 DJP연대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JP, 박태준과 함께 젊은이들이 입는 티셔츠를 입고, 디제이덕의 노랫가락에 맞춰 몸을 흔들고 춤을 추는 자기변신을 감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4주기 추념식에서 노무현의 후계자들은 5년 후를 기약하며 다짐했다. 이들은 "세력으로서 친노는 없다"고 잘라서 말한다. 다만 "가치로서의 친노가 있을 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과연 그럴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주장에 동조할까? 우선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부터 그런 말을 들으면서 피식하고 웃고 말았으니 말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2002년 초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거의 단기필마(單騎匹馬)로 고군분투했다. 천정배 의원이 정무특보로 보좌했을 뿐이다. 이른바 386(현재 486) 참모들은 아직 실무자 급으로 까맣게 보이지도 않을 때다. 하지만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386 참모들이 대거 국정의 조타수 자리에 앉았다.
2008년 노무현 시대를 좌지우지했던 386들은 폐족(廢族ㆍ조상이 죄를 지어 더 이상 벼슬에 나가지 못하는 처지) 운운하며 권좌에서 물러났다. 2009년 노 전 대통령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친노들은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2011년 말 안철수 바람 속에서 흔들거리던 민주당을 거의 무혈입성 하듯이 접수했다.
지난 해 총선과 대선, 분명 '세력으로서 친노'가 있었고, 이들이 양대 선거를 주도했다. 그런데 아니란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치' 운운한다. 5년 전 폐족을 운운했으면, 왜 폐족의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지 처절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했다. 아마추어리즘에 의욕만 앞세운 결과 그런 처지가 되었노라고 대국민반성문이라도 썼어야 했다.
민주당 새 지도부가 봉하마을을 찾았을 때 비아냥거리고, 광화문 추모행사에서 멱살을 잡아서는 안 된다. 노무현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다. 몇몇 세력이 독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자신들만의 막연한 선민의식과 근거 없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노 대통령을 독점하려고 한다면 이는 오히려 고인을 욕보이는 꼴이다.
친노들은 감연히 노란색을 버릴 수 있어야 부활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다. 10년 전 추억에 사로잡혀 자기들만의 동굴 속에 갇혀서는 미래가 없다. 노무현의 정신을 진정한 가치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라도, 노무현의 바보 같은 진정성과 김대중의 두려움 없는 진화의 용기와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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