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 직장여성인 A씨는 부친이 대장암 4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들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를 돌볼 자식이 나뿐이고, 다행히 아직 결혼도 안 했으니 어떻게든 이겨보겠노라고. 그 때만 해도 간병인을 쓰면서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직장에서 신임을 받고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참혹했다. 암의 근원인 대장은 손도 못 대고 간과 폐로 전이된 암 수술만 몇 차례. 아무리 능력이 탁월해도 아버지 수술 때마다 일주일 이상 자리를 비우는 직원을 배려해줄 직장은 없었다. 게다가 매달 200만원을 훌쩍 넘는 간병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사직서를 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항암치료 10여 회 만에 결혼자금으로 모아놓은 돈은 바닥이 났다. 아버지는 2년간 사투 끝에 세상을 떠났지만 A씨는 3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말기 암환자 보호자 5명 중 1명이 A씨처럼 간병을 하다가 직업을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직업이 없는 보호자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때문에 암환자뿐 아니라 보호자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윤정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과장,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연구팀은 전국 11개 병원에 입원한 말기 암환자의 가족 381명을 설문 조사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27일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보호자 381명 중 19.8%가 간병 중 하던 일을 그만 뒀다. 퇴직 이유로 직업과 간병을 병행할 수 없었다는 응답(71.6%)이 가장 많았다.
향후 직업을 잃을 우려도 높았다. 현재 직업이 있는 보호자 133명 가운데 40.6%가 극심한 피로를 호소한 것을 비롯해 '일하는 시간이 줄어 벌이가 줄었다'(33%), '업무능력이 감소했다'(24%)라고 답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직업 없이 간병만 한다고 해도 심적, 신체적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원래 직업이 없던 보호자 중 133명을 무작위 추출해 물어본 결과 56%는 경제난 등 간병 부담이 크다고 답했다. 심한 피로감(32%), 불안 우울 등 정서적인 스트레스(16%)를 호소한 보호자도 다수였다.
연구팀은 말기 암환자 보호자의 직업 상실과 간병 부담 문제가 매우 심각한 만큼 국가차원의 대책이 하루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를 주관한 윤영호 교수는 "말기 암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이 환자보다 더 심한 우울증을 호소하는 등 건강상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며 "공적 간병 지원이나 지역 중심의 간병 공동체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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