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풀리니, 통의동 골목은 어느새 할머니들 차지다. 마당을 실내처럼 개량한 한옥들이 많으니, 하늘이 툭 트인 골목이 옛 마당처럼 시원한 것이다. 또 거개가 혼자 사시니, 골목은 사회적 공간이기도 하다.
골목에 조르라니 둔 화분에 상추며 고추 등속을 심고는, 큰 농사라도 짓는 듯 할머니들끼리 작물이야기가 한창인 모습은 사진가 김기찬 선생이 찍은 ‘골목 안 풍경’ 그대로다. 그럴 때 내가 지나가면 으레 말이 건너오기 마련인데, 평소에는 살가운 반말이다가 내 곁에 누구든 동행이 있으면 꼭 존대로 바뀐다.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새댁이’가 갤러리 ‘관장’이기도 한 것을 알고 탄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할머니들이 그저 노인이 아니라 어른임을, 그럴 때마다 느낀다.
몇 집 건너 한옥에는 젊은 시절 사목활동을 해서 ‘목사할머니’라고 불리는 할머니께서 혼자 사신다. 류가헌이 개관 전시를 할 때, 골목에서 만난 목사할머니께 전시 보러 오시라 인사를 했다. 전시 오픈 첫날, 첫 관람객으로 목사할머니께서 오셨다. 할머니는 투피스에 스카프까지 몰라볼 정도로 성장을 하셨고, 전시를 다 본 후에는 흰 봉투를 건네셨다. ‘전람회 축하, 사업 번창하시오’ 라고 쓰인 봉투 안에는 현금 이만 원이 들어있었다. 재미난 일은, 전시를 보고 간 십여 분 후에, 골목 앞을 오가는 목사할머니를 다시 만난 것이다. 방금 전의 차림은 간 데 없고, 늘 입는 몸뻬 차림이었다. 가까이 이웃한 집으로의 ‘전람회’ 외출을 위해, 그런 성장을 하신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분을 동네 최고 멋쟁이라 여긴다.
골목 건너 앞집에는 ‘분홍할머니’가 사신다. 머리카락이 온통 흰데, 늘 분홍옷을 즐겨 입어 우리끼리 부르는 호칭이 그러하다. 이 할머니는 흰 살갗에 핏기 도는 것 같은 색인 ‘분홍’처럼 따뜻하다. 골목에서 마주치면, ‘커피 한잔 하고 가’라고 불러 세운다. 갤러리에 북카페가 있으니, 커피집 주인한테 커피를 대접하는 격이다. 대화가 그리워 그러시려니 싶어, 몇 번 댁으로 따라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마다 인스턴트커피를 뜨겁게 타서, 아마도 할머니네 집에서 가장 좋은 찻잔일 예쁜 잔에 내어주신다. 어느 날은 골목에서 얼굴까지 불그레한 분홍할머니를 만났다. 근처 호프집에서 생맥주 한잔 하셨다며, “나이 드니 생맥주를 같이 마실 사람이 없는 게 제일 서운해”라고 덧붙이셨다. 나는 그날 저녁, 생맥주 맛이 좋은 호프집에서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다. 새삼, 그 친구들과의 시간이 고마워졌다. 할머니와도 언제 함께 호프집에 가서 생맥주 한잔 나눠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가 저리 눈에 잘 띄는 ‘분홍색’으로 매일 골목 앞을 오가니, 지키지 못할 혼자 약속도 아니다.
서촌 한옥동네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다 보니, 서촌 지역을 취재 온 기자들로부터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가까운 삼청동이나 인사동, 또는 북촌과 서촌의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그것은 바로 목사할머니나 분홍할머니 같은, 이 동네에서 오래 터를 틀고 살아 온 주민들이 류가헌 옆에, 아니 동네 곳곳 작은 문화공간들 사이사이에서 지금도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좁은 골목들은 방문객들이 테이크아웃 음료를 마시며 지나는 길이기 이전에, 동네 할머니들이 볕을 쬐며 다리쉼을 하는 공간이요 꼬맹이들이 세발자전거를 타는 공터다. 그것이 서촌을 아직도 ‘사람냄새’ 나는 동네이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흔히 예술가들, 가난한 작업자들이 먼저 어느 지역에 자리를 틀고 그곳에 문화적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 다음엔 소규모 상업 가게들이 들어서고, 그러다 거대자본이 유입되면서 제일 먼저 입주한 예술가들이나 작은 문화공간들이 세를 감당하지 못해 다른 지역으로 옮아가고, 원래 살던 주민들도 이주하게 된다고 한다. 먹이사슬 같은 구조다. 지금 서촌은 아마도 서울의 오래된 한옥동네라는 고즈넉함과 원주민들의 생활공간 틈새에, 예술가들과 작은 문화공간들이 들어서면서 독특한 거리문화가 활기를 띤, 그것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서서히 잦아지는, 말하자면 적당한 정도의 초기 상업화가 이루어진 단계일 것이다.
지난 주말 동안에도 류가헌에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골목 끝에 자리해 있으니 방문객들은 목사할머니와 분홍할머니를 지나고, 동네 꼬맹이들을 지나쳐서 왔을 것이다. 전시장을 벌여두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았으면 좋겠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류가헌의 딜레마다. 앞으로 서촌이 풀어가야 할 고민도 거기에 닿아있을 것이다.
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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