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극단의 주장과 행동은 사회를 파국으로 몰아가
자연에서 극단을 제어하는 방안에 대한 교훈 얻어야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으로 구성된 사막과 바닷물이 들락날락 거리는 바닷가의 습지는 겉보기에는 너무도 다른 생태계다. 한쪽은 일 년 내내 물이라고는 구경하기도 어렵지만 다른 쪽은 사시사철 물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두 생태계에 서식하는 식물 모두는 동일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야 하는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막에 사는 식물들은 하루 종일 내려 쬐는 뜨거운 햇볕과 얼마 내리지 않는 비 때문에 항상 가물은 환경을 견뎌내야 한다. 바닷가 식물 주위에는 온통 물 천지지만, 소금물이기 때문에 오히려 식물 몸 속에 있는 물이 밖으로 빠져 나가게 되고, 결국은 매우 건조한 환경에 노출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겉모습의 큰 차이와 달리 실제로는 두 생태계 모두 물이 극단적으로 부족한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사는 식물들도 다른 일반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광합성'이라고 부르는 활동을 해야 한다. 햇빛이 충분할 때, 잎에 '기공'이라고 부르는 작은 구멍을 열어서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후 태양빛을 이용해서 자신이 이용할 물질로 변환시키는 작용이 바로 그것이다. 숲이나 들판에 자라는 식물들은 햇빛이 쨍쨍 내려 쬐는 한낮에 이 활동이 왕성하다. 그런데 이산화탄소를 얻기 위해 기공을 열어 놓으면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이 기공을 통해 물이 증발해서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보통의 식물들은 이렇게 물을 잃어버려도 땅속에 있는 물을 빨아들여서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사막이나 바닷가에 사는 식물들에게 있어서 한낮에 기공을 열어 광합성을 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에너지 물질을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귀중한 물을 잃어버리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이런 곳에 사는 식물들은 독특한 방법을 만들어 냈다. 사막에 사는 식물들, 예를 들어 선인장과 같은 식물은 'CAM'이라 부르는 독특한 광합성 방법을 사용한다. 이들은 물이 증발하지 않는 밤중에 기공을 열어 이산화탄소를 몸 속에 잔뜩 머금었다가 보통 식물들이 기공을 활짝 여는 한낮에는 거꾸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밤 동안에 미리 흡수해 둔 이산화탄소로 광합성을 한다. 배구에 비교해 말하자면 시간차 공격을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바닷가 습지에 사는 식물들은 'C4'라고 부르는 또 다른 광합성 방법을 사용한다. 이들은 기공을 거의 닫은 상태에서 조금씩 들어오는 이산화탄소를 가두어 두는 또 하나의 세포층을 만들어서 광합성을 한다. 보통 식물과 달리 기공을 거의 닫아서 물의 증발은 막으면서도 이산화탄소만 선별해서 저장하는 공간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배구의 기술에 또 한 번 비유하자면 이동 공격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이 존재한다. 이 모든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이지만, 지나친 극단의 주장과 행동은 사회를 파국으로 몰아간다는 것 또한 역사의 교훈이다. 종북이라는 단어 이외로는 세상을 설명할 줄 모르는 집단이나 아직도 항일 빨치산 투쟁이 유일한 선이라고 믿는 집단들은 전혀 다른 극과 극처럼 보이지만, 사막과 바닷가의 식물들처럼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행태나 활동 내용은 다양하지만, 사실은 폭력성, 배타성, 교감능력의 부재 등의 측면에서 본질이 매우 유사하다. 자신의 광기 어린 믿음을 세상에 전파하려는 배타적인 종교 단체,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주장을 펴는 테러 조직 등이 이러한 극단의 대표적인 예다.
사막에 비가 내리고 바닷가에 강물이 많이 흘러 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까 말한 CAM이나 C4 식물들은 경쟁에서 밀려나서 서서히 사라진다. 왜냐하면, 물이 충분히 공급되는 상태에서는 보통 식물의 광합성 방법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극단을 제어하는 방안도 이런 자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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