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8시 40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유득규씨 등이 절을 시작했다. 30일째 이어온 '승리 염원 100배'다. 길 건너 혜화동 성당 종탑에서 105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여민희씨와 오수영씨도 함께 했다. 절이 진행되는 동안 전교조 해직교사인 윤희찬씨가 농성자들의 아침식사를 들고 도착했다. 집이 근처라는 윤씨는 "지나다 고공농성 현장을 보고 딱한 생각이 들어 밥이라도 한 끼 보태자는 마음에 이러고 있다"고 말했다. 절을 마친 유득규씨가 아침 식사를 들고 종탑으로 향했다. 종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서 밤을 보낸 강경식씨가 있었다. 계단 끝에 다다른 강씨가 천장에 있는 구멍을 향해 "줄 내려요"라고 외치자 밧줄이 내려왔다. 이 줄은 고공농성자들에게 밥과 물을 나르는 '탯줄'이다.
재능교육처럼 모든 고공농성장에는 하늘에 있는 이들의 일상을 책임지는 동지들이 존재한다.울산 현대차 농성장 밑 천막을 지키고 있는 박두원씨는 점심 저녁 하루 두 끼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매일 장을 본다. 그는 "웬만한 음식은 다 만들 줄 알고 갈비찜이나 아구탕을 만든 적도 있는데 위에서도 맛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먹는 것뿐 아니라 싸는 것도 지상농성자가 처리해야 한다. 겨울에 핫팩을 준비했던 박씨는 요즘에는 얼음을 물병에 담아 올려주고 있다.
고공농성자의 생활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지상농성자가 챙겨야 할 중요한 몫이다. 유성기업 노조 홍종인 지회장이 고공농성을 하는 동안 지상에서 함께 농성을 한 김일겸씨는 "홍 지회장은 혼자 농성을 했기 때문에 고립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24시간 지상에 노조원들이 상주하면서 수시로 대화를 나눴다. 목에 줄까지 메고 있는 상황에서 까딱하면 잘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 마음을 못 놓았다. 밤에도 지상농성장의 불을 끄지 않았다"고 말했다. 쌍용차 고공농성장을 지킨 김정운씨는 "늘 함께 있다 보니 멀리서 행동하는 것만 봐도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며 "좀 안 좋아 보이면 계속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거의 모든 고공농성자의 고생을 함께 나누지만 지상농성자들은 자신의 겪는 고달픔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잘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 "정말 추울 때만 난로를 틀었는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더 추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좀 그랬다" 309일 동안 이어진 한진중공업 김진숙씨의 크레인 농성을 함께한 황이라씨는 "제일 힘든 사람은 당연히 고공에 있는 분들이지만 지상에서 도와주는 사람들도 힘들지 않는 건 아니다. 힘들어도 위에서 눈치채면 안되니까 내색도 못 한다. 지상에 있는 분들도 똑같이 격려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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