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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더 절박해지는 고공의 외침, 귀닫은 사회의 '실패'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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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더 절박해지는 고공의 외침, 귀닫은 사회의 '실패'는 아닐까

입력
2013.05.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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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인근 30m 높이 송전탑에서 171일간 고공농성을 이어온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과 복기성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지난 9일 탑을 내려왔다. 요구조건인 국정조사,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실현되지 않았다. 3월 20일엔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 공장 앞 굴다리에 올라 농성을 벌여온 홍종인 지회장이 건강악화로 151일 만에 농성을 중단했다. 노조파괴 책임자 처벌, 해고자 복직, 어용노조 해산 요구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하며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인근 송전탑에 오른 최병승씨와 천의봉씨의 고공농성은 200일을 넘겼고, 재능교육 해고자 여민희씨와 오수영씨가 복직 등을 내세우며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 종탑에 오른 지도 100일이 지났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가 실현될 전망은 현재로선 아득해 보인다. 이들의 고공농성은 실패했거나 실패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겨울,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비교적 빨리 농성이 마무리된 곳도 있다. 쌍용차와 같은 날인 지난해 11월 20일 고공농성을 시작한 경기 평택시 광원목재 노조 이승범 지회장은 이틀 만에 내려올 수 있었다. 주야 2교대 근무를 3교대로 바꾸자는 노조의 요구를 외면하던 회사가 협상에 응했기 때문이다. 또 같은 달 14일 경기 동두천시청에서 대양운수 노조 성상운 분회장의 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벌어진 고공농성도 10일 만에 마무리됐다. 당시 고공농성에 나섰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차재만 사무장은 "법적으로도 해고 문제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해 위험한 고공농성 대신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는 방향으로 투쟁방법을 전환했다"고 말했다.

고공농성이 조기에 끝난 곳의 특징은 노동자들이 법과 제도에 기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고공농성이 결실 없이 마무리되거나 장기화하고 있는 곳은 제도적 틀 안에서 교섭이 이뤄지지 않는 곳들이다.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조를 교섭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쌍용차는 정리해고자의 대화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고, 재능교육은 계약이 해지된 사람들과는 단체협약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소연 할 곳 없는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이라는 극단적인 투쟁 방법을 선택한 데는 한진중공업 고공농성의 성공이 영향을 끼쳤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타워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농성을 벌인 끝에 정리해고자 재취업 등의 합의안을 이끌어내고 2011년 11월 웃는 얼굴로 내려왔다. '희망버스'로 상징되는 사회적 호응과 사태 해결에 적극 개입한 정치권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후 벌어진 잇단 고공농성은 양상이 달랐다. 희망버스가 현대차와 쌍용차 농성장을 찾긴 했지만 한진중 때처럼 열기가 달아오르진 않았고 정치권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은수미(민주) 의원은 "한진은 놀랍고도 예외적인 일이었고 처음 벽을 뚫는 의미가 있었다. 그런 게 매년 반복될 수는 없다. 벽을 뚫으면 제도나 입법을 통해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리해고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희망버스는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노동현장 문제를 정치권으로 들고 가서 해결하려는 것이 반복되면 반향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노사관계 발전에 긍정적이지도 않다. 한진 사태를 넘어 근로자들이 왜 법적인 해결에 기댈 수 없는가 고민을 했어야 했는데 교훈을 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진중 고공농성의 성공이 사회적 차원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진중 사태 후 이어진 고공농성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농성의 실패가 아닌 사회의 실패라고 진단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노동계도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는 "농성자들은 백일도 넘게 고공에서 견딤으로써 사회에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충분히 제기했다. 농성자들은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문제가 있으니까 보라고 촉구한 것이다. 그것을 보지 못하고 풀지 못한 사람들이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 GM 회장을 만나 통상임금 문제를 풀겠다고 한 사실을 지적하며 "외국 기업가의 말 한마디에 사법부의 판결까지 바꾸겠다고 하면서 목숨을 걸고 철탑에 오른 자국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또 정치권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앞다퉈 고공농성장을 방문하고 쌍용차 국정조사를 약속했지만 선거가 끝나자 새누리당은 입장을 바꿨고 고공농성은 정치권의 현안에서 멀어졌다. 김진숙씨는 "조직이 안 좋으니까 자꾸 개인이 희생하는 방향으로 간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가 조직력을 회복해야 하고 그 힘으로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쌍용차 고공농성을 마친 한상균씨는 언론에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노동자들은 밥을 굶고 목숨 걸고 철탑에 올라가야만 보도에 나온다"고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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