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2007년, 와병 중이던 오규원 선생이 간병하던 이원 시인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쓴 유고시의 전문이다. 평생 기관지염으로 고생하던 시인은 이 유고시처럼 한 줌 재가 되어 전등사 적송 아래 뿌려졌다. 수목장이다.
2010년, 의 번역자이자 신화연구가이며 그 자신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기도 했던 이윤기 선생이 타계하자 당신의 작업실이 있던 경기 양평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 장지는 그가 심고 가꾸던 나무 500그루 근처. 그 역시 수목장을 선택했다.
일찍이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 즉 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도이며 사물 각각이 전부 진리라는 선가의 말을 인용, 자신의 유고시집의 제목을 '두두'로 지은 시인과 종교와 신화에 심취, 평생 동안 열정적인 지적 모험을 그치지 않았던 소설가가 죽어 마침내 나무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시 그들답다. 그들의 문학은 수많은 여정을 거쳐 결국 이 순리, 이 생태의 수락으로 귀결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처님오신 날'이던 17일, 집안의 가묘를 이장했다. 파묘를 하고 납골을 수습하여 화장을 한 다음, 고향 선산을 떠나 용인 천주교 묘역의 가족 납골묘에 이장하기까지, 이틀이 소요되었다. 이 이틀 동안, 나는 비로소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있고 간병을 전담하는 아버지의 건강 역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두 노인은 평생을 제사를 모시고 선산을 관리하는 데 바쳐왔다. 팔남매의 맏이라는 위치는 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삶을 강요한다. 귀한 음식은 항상 제사를 위해 비축되고 휴일은 언제나 성묘로 대체되어 왔다. 그것은 죽은 자와 함께 하는 삶, 그들의 애도에 바쳐진 삶이라고 해도 좋겠다. 내 부모 그 누구도 이 삶의 형식을 자신들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해본 적 역시 한 번도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장담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숙명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화장을 선택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이제까지의 자신들의 의무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로써 이제까지의 자신들의 과업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총체적으로, 그것은 죽음에 대한 예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이장은 나에게 부모의 유한한 삶을 예감하는 행위로 다가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슬프고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나의 부모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앞두고 그들의 부모에 대한 예를 다함과 동시에 자식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어쩌면, 그들은 죽음을 둘러싼 이제까지의 우리들의 애도 방식이 그들의 세대에서 끝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예감한 것인지도 모른다.
납골당의 대여 기간은 10년이다. 10년이 지나면 우리 세대가 다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지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 장지가 사라지고 납골당도 무의미해지며 죽음 자체가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되리라는 것은 알겠다. 오규원, 이윤기 선생의 죽음이 이를 말해준다. 그들이 옳다.
평생 장지를 보존하고 제사를 모시느라 자신의 시간을 차압당한 내 부모의 무덤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을 앞두고, 나는 운다. 불효자는, 언제나 뒤늦게 운다. 마치 옛 이야기 속 청개구리처럼.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다. 나는 이 거대한 우주가 합작하고 있는 우리 세대의 숙명 앞에 도리 없음으로 체념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나의 부모가 자연의 일부로 영원히 회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믿는다. '두두시도 물물전진'을.
신수정 문학평론가 ㆍ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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