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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꾼에서 조력자로… 셰르파 '을의 굴레' 벗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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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꾼에서 조력자로… 셰르파 '을의 굴레' 벗나

입력
2013.05.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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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7,0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지난달 27일 유럽의 등반가와 현지 고산 민족 셰르파간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산소가 희박해 숨쉬기 조차 힘든 고산지대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날의 다툼을 등반가와 셰르파간 수십 년 묵은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으로 보았다. 7,000m 고산지대에서 일어난 사상 초유의 싸움은 사건 발생 사흘 만에 네팔등반협회(NMA)의 중재로 양측이 화해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셰르파를 보는 서구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비슷한 일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텐트로 차를 끓여오라"

사건은 조나단 그리피스(영국), 시몬 모로(이탈리아), 율리 스텍(스위스) 등 유럽 등반가 3명이 해발 7,470m에 있는 캠프3으로 향하던 중 일어났다. 새 루트를 찾던 이들 등반가는, 로프를 고정한 후 올라가자는 셰르파들의 제안을 "그럴 필요 없다"고 무시한 뒤 등반을 강행했다. 하지만 그리피스 등이 먼저 빙벽을 오르고 뒤따르던 셰르파 일행이 날카로운 빙하에 맞을 뻔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셰르파들이 거세게 항의했고 결국 그리피스 일행은 캠프2로 후퇴했다. 그리피스는 "캠프2에 머물던 다른 셰르파들이 함께 몰려와 한밤중에 우리 텐트를 공격했다"며 "우리를 에워싸고 돌을 던지며 목숨을 위협했다"고 말했다. 목격자들은 그리피스 일행이 셰르파에게 텐트로 차를 끓여오라고 명령했다고 전했다. 그리피스 일행은 결국 등반을 포기하고 하산했다. 이들은 "셰르파들은 서구 등반가들이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우리가 그들을 무시해서 다툰 게 아니라 그들이 그 동안 쌓인 불만을 우리에게 터뜨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슈퍼맨이었다"

셰르파는 16세기 티베트에서 네팔로 이주한 히말라야 고산 민족이다. 고산 동물 야크와 양떼를 키우며 목축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이들은 20세기 들어 서구 등반가의 히말라야 방문이 잦아지자 짐을 들어주고 길을 안내하며 돈벌이를 했다.

셰르파로서 최초로 세계에 이름을 날린 이는 텐징 노리게이(1914~1986)다. 그는 에드먼드 힐러리가 1953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처음으로 오를 때 함께 했던 파트너였다. 이후 수많은 셰르파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10년째 가이드와 포터 등으로 일하는 노부(32)는 "셰르파가 수개월의 등반 후 마을로 돌아오면 돈뿐 아니라 초콜릿과 비스킷 등 먹을 것을 함께 가져와 마을이 풍요로워졌다"며 "우리에게 그들은 슈퍼맨이었다"고 말했다.

등반가들의 손발

과거 셰르파는 서구 등반가의 짐꾼에 가까웠다. 장비도 없고 제대로 훈련이나 교육을 받지 못해 서구 등반가의 지식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대접도 박했고 희생된 셰르파도 부지기수였다. 히말라야를 보호하고 셰르파를 돕는 히말라야트러스트의 레베카 스테판 영국지부장은 "옛날에는 푼돈을 주고 그들의 노동력을 산다는 생각이 팽배했다"며 "하지만 그들의 도움 없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베레스트에 처음 오른 힐러리는 노르게이의 공을 인정해 1960년 히말라야트러스트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이후 네팔에 학교를 세우고 셰르파를 위한 복지제도를 마련했다.

셰르파는 식량 공급과 텐트 설치를 책임지는 베이스캠프 셰르파와 등반을 안내하고 직접 산을 오르는 등반 셰르파로 구분된다. 등반 셰르파가 되려면 NMA의 등산학교에서 고산 원정 가이드 자격증을 따야 한다. 수입은 역할과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1인당 평균 8~10㎏의 짐을 운반하는데 짐 무게에 따라 1인당 약 125달러를 받는다. 등반 셰르파는 등반 지점과 기간에 따라 급료와 장비 비용을 받는다. 서구 등반가의 원정 비용은 1인당 평균 6만달러(6,600만원)인데 셰르파 한 명에게 지급되는 비용은 2,000달러(220만원) 안팎이다. 서구 등반가보다는 적은 액수지만 2011년 네팔의 1인당 국내총생산(642달러ㆍ71만원)보다는 훨씬 많다. 셰르파는 체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개 10대 후반부터 40세까지 일하고 이후에는 관광가이드 등으로 직업을 바꾼다.

사라지는 문명과 자연

네팔의 내전이 2006년 종식되면서 히말라야 등반가가 급증했다. 이로 인해 관광업이 활성화하면서 셰르파의 수입도 늘었다. 부유해진 셰르파는 자녀를 미국 등으로 유학 보냈고 일부는 의사나 사업가, 법률가 등으로 변신했다. 미국 내 셰르파 이민자는 2,000명이 넘는다. 히말라야에서 장비업체를 운영하는 셰르파 타지는 "서구화로 셰르파의 전통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며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마을을 떠나는 사람이 증가해 공동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현재 네팔에 남아있는 셰르파 민족은 약 15만명인데 이 중 등반 셰르파는 2만~4만명으로 추정된다.

셰르파의 삶의 터전인 히말라야의 훼손도 우려된다. 에베레스트를 찾는 등반가는 매년 3만5,000명에 이른다. 네팔 당국은 10여년 전부터 등반대로부터 예치금을 받은 뒤 그들이 쓰레기를 수거해오면 돌려주는 방식으로 쓰레기 줄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셰르파들도 매달 수 톤의 쓰레기를 수거한다. 등반 중 식수로 사용하는 빙하도 급격하게 줄었다. 노부는 "돈을 냈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등반가가 있다"면서 "지역 사회와 주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60년 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힐러리는 "많은 서양인에게 에베레스트는 거대한 아름다움이자 오르고 싶은 높은 산이지만 그곳이 터전인 셰르파들은 누릴 것이 많지 않다"며 "의료품 부족에 시달리고 교육을 받지 못하며 그들이 기대고 있는 숲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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