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의 반격일까, 경제민주화 기조를 염두에 둔 대기업 사정일까. 아니면, 국민신뢰를 되찾기 위한 노력인가. 2008년 이후 여러 차례 'CJ그룹 수사'카드를 만지작거렸지만 번번이 이를 꺼내 들지 못했던 검찰이 본격적으로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을 정조준하자, 지금 이 시점에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장의 비자금 파일이 거론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2008년 검찰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했던 CJ그룹 회장 비서실 재무2팀장 이모(44)씨 살인 청부 의혹 사건을 지휘하는 과정에서 의문의 뭉치돈의 존재를 파악했다. 당시 이씨로부터 압수한 USB에는 이 회장이 운용한 차명 재산 내역이 포함돼 있었지만, 검찰은 자금원 추적에는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자신이 최소 수천억원의 차명자산을 관리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회장이 "이는 선대로부터 물려 받은 돈"이라며 세금 1,700억원을 납부했다. 국세청은 별도의 고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비자금 수사는 유야무야 됐다.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박연차 게이트'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CJ 비자금 수사의 기회가 있었다. 당시 대검은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CJ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이 회장을 3차례 불러 참고인 조사를 벌였지만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 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관련 사건 수사는 모두 중단됐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정보분석원(FIU)이 2011년 초 이 회장이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에서 들여온 해외 비자금으로 CJ 주식 70억원어치를 매입한 흐름을 포착하면서 CJ 비자금의 꼬리가 밟혔다.
지난해 초부터 사정기관 주변에서 끊임없이 CJ수사에 대한 전망이 나온 것은 당시 대검 중수부가 FIU 자료를 바탕으로 CJ그룹에 대한 회계분석 작업을 하는 등 내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대검 중수부 폐지론'이 비등하고 검란(檢亂)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수사는 다시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본격적인 수사 착수 문턱에서 2,3차례나 맥없이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5년 만에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한 검찰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묻어난다. 수사가 지연된 만큼 내사가 탄탄하게 이뤄진 것이다. 잘 차려진 밥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인 윤대진 부장검사는 직전까지 대검 중수2과장을 역임하며 CJ그룹 내사를 해왔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강조돼 온 경제민주화 기조도 검찰이 방아쇠를 당기는데 한 몫 했다는 평가다. 지하경제 양성화, 역외탈세 엄벌 등은 박 대통령이 꾸준히 강조해 온 국정과제로, 역외탈세는 대기업 비자금 조성의 대표적 수법이다.
지난해 검란 사태 이후 몸을 사려온 검찰 입장에서도 이번 수사는 지난 정권에서 추락한 위신을 만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검찰로서는 이번 수사가 새 총장 체제에서 앞서 실패했던 비자금 실체를 규명하고 국정과제를 수행해내는 동시에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다목적 카드'인 셈이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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