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인협회(회장 신달자ㆍ
사진)가 협회 소속 젊은 시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논란에 휩싸인 근대인물시집 (민음사 발행)을 전량 회수키로 했다.
시협은 55명의 젊은 시인들이 '한국시인협회를 생각하는 시인들'이라는 이름으로 시집 전량 회수와 집행부 사과를 요구하는 서신을 발표하자 23일 긴급 회장단 회의 등을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
신달자 회장은 이날 협회 홈페이지에 게시한 '한국시인협회를 생각하는 시인들의 질문에 답합니다'라는 답신에서 "단행본 은 56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문학단체 한국시인협회가 그간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근대사의 주요 인물들이 남긴 빛과 그늘을 문학의 눈으로 살펴보겠다는 취지에서 준비했다"며 "그러나 기획취지가 충실히 반영되지 못한 작품들이 일부 수록되었고 누락된 인물도 있는 등 시인협회를 사랑하는 시인들과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시집과)관련하여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여러분들의 충정 어린 마음을 온전히 받아 시집 을 전량 회수할 것이며, 아울러 30일로 예정돼 있던 출판기념회를 비롯한 모든 행사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출판기념회에는 시집에 수록된 시 중 총 17편의 시 낭송이 예정돼 있었으며, 시 낭송자 명단에는 문제가 된 '박정희''이병철' '정주영'시편을 쓴 시인들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아들 정몽준 의원도 포함돼 있었다.
시로 읽는 한국 근대 인물사를 표방한 은 시대적으로는 개화기부터 최근까지, 이념적으로는 좌우를 아우르며 근대사의 주요인물 112명을 선정해 동수의 시인들이 한 편씩 쓴 시를 모은 인물시집이다. 하지만 역사적 평가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찬양한 시를 수록했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포스코 SK텔레콤 우리은행 한국마사회 등의 협찬을 받아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등 해당 재벌기업 총수들의 공적만 거론한 시를 실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물 명단에서 빠진 것에 대해 인물 선정이 편파적이라는 비판도 높았다.
국내 단행본 출판계를 대표한다는 민음사도 책 내용이 사회적인 논란이 돼 전량 회수까지 하는 이례적인 사태를 맞았다. 이 시집은 시협이 자체 기획한 후 민음사에 출판을 요청해 출간 취지에 호응한 민음사가 받아들이면서 책으로 나왔다. 민음사 관계자는 "시집 제작 과정에서 문제가 된 일부 시들에 대해 시협에 우려를 표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시협 의견에 따라 그대로 출간했다"면서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고 시집 회수를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음사는 초판 1,000부를 찍어 300부는 홍보용으로 배부하고, 700부를 판매용으로 시중 서점에 배포했다. 회수 결정에 따라 이날부터 알라딘 등 인터넷서점에는 이 시집에 '절판'안내가 표시됐고, 오프라인 서점에 깔린 시집도 전량 반품됐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