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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5월 24일] 인터넷 시대의 언론과 '기억의 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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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5월 24일] 인터넷 시대의 언론과 '기억의 형벌'

입력
2013.05.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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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물과 어떤 사건을 침묵과 망각 속에 빠뜨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종종 잊고 싶은 일들을 행하거나 경험한다. 모든 인간사가 그런 것처럼 내가 망각하고 싶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은 더 잘 기억한다. 이런 말들은 발이 없지만 천리를 간다.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수록 진실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을 더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이 잊고 싶은 일들을 많이 저지를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행하면서도 마치 모든 사람의 공익을 위해 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사람들, 겉으로는 사람으로서 응당 지켜야 할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도리와 본분을 모르는 사람들, 정당한 절차와 합리적 결정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모든 것을 밀실에서 결정하는 사람들. 이런 권력자들이 행하는 떳떳하지 못한 일들은 대개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이 손에 쥔 가장 커다란 권력 중의 하나는 어떤 인물과 사건을 망각 속에 빠뜨릴 수 있는 힘이다.

권력자들은 말을 못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검열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아마 불에 의한 검열일 것이다. 비판세력을 누르기 위해 일체의 학술토론을 금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모든 서적을 몰수하여 불태워 버린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는 대표적인 권력행위이다. 읽히고 싶지 않은 책을 금서로 지정해 불태우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못하도록 사람들에게 입마개를 씌우는 검열 행위는 권력의 일반적인 속성이다.

요즘 나라 전체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윤창중 사건을 지켜보면, 인터넷 시대에는 이런 검열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관해 끝없이 쏟아지는 말들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대통령의 입으로서 지켜야 할 공직자의 윤리를 따지더니 갑자기 성추행의 경범죄와 성폭력의 중범죄의 차이를 논한다. 어떤 보수 논객은 이 사건이 친노종북 세력에 의해 교묘하고 계획적으로 꾸며진 거짓 선동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다른 보수주의자들은 이번 사건을 나라망신으로 받아들인다.

이번 사건과 그 진실을 덮고 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 같다. 그들이 누구일지는 상상에 맡기자.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이 사건을 망각 속에 빠뜨리는 현대적 방식이다. 한 번 일어난 사건은 사라지지 않고 끝없이 유통되는 인터넷 시대에 금서와 금언의 부정적 검열이 거의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사건의 진실을 덮을 수 있을까? 로마인들은 어떤 사람이 중죄를 범했을 때 그의 사후에 이름을 공적부에서 삭제하거나 동상을 철거함으로써 그와 관련된 모든 기억을 모조리 없애버리는 '망각의 형벌'을 갖고 있었다. 그에 관한 말이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모든 흔적을 지우는 검열만큼 무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인터넷 시대의 권력은 다른 형벌을 발전시킨다. 옛날의 권력이 정보를 가능한 한 줄이는 빼기의 부정적 방법을 사용하였다면, 오늘날의 언론권력은 정보를 과잉 생산하는 더하기의 긍정적 전략을 취한다. 인터넷에 성추행 혐의를 부정하는 기자회견 기사가 올라오면, '성추행 하는 '미친놈'들에 관한 뉴스 때문에 스트레스 정말 팍팍 받는다'고 지난해 썼던 칼럼기사가 곧바로 딸려온다. 이렇게 이 사람의 이미지는 굳어지고, 잊히고 싶어야 잊히지 않는 저주받은 '기억의 형벌'을 받게 된다.

어떤 것도 망각되지 않도록 말을 양산하는 언론도 하나의 권력이다.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모든 것이 권력이라면, 언론은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 말로써 오히려 진실을 덮는 검열 권력이다. 이제 인터넷 시대의 언론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에 대항하여 진실을 밝히는 비판자의 역할을 포기한 것인가? 지금의 언론은 인터넷과 경쟁하면서 진실은 마음에 두지 않고 말에 말을 더함으로써 의미 없는 정보만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번 사건의 당사자가 언론인 출신이며 참말이 아닌 막말로 대변인으로 발탁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언론마저 인터넷의 논리를 따라 진실을 외면하면, 선정적인 언론비판은 언제든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기억의 형벌을 선고하는 언론재판으로 변질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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