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학규는 갓 태어나 엄마를 잃은 청이를 젖동냥으로 키웠다. 이 집 저 집 돌며 남의 젖을 얻어 먹였다. 분유가 대중화하기 오래 전 우리나라에선 비단 소설뿐 아니라 현실도 그랬다. 모유를 대체할 만한 가축의 젖마저도 귀했으니 말이다.
현대의학 관점으로 보면 이런 무분별한 젖동냥은 위험천만하다. 젖을 제공한 여성이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이나 간염, 매독, 포진(헤르페스) 등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갖고 있으면 바이러스가 혈액을 타고 옮겨 다니다 젖으로 빠져나가 수유 과정에서 아기의 몸으로 침투할 수 있다. 어른보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아기는 바이러스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분별한 젖동냥이 최근 다시 등장했다. 일부 부모들이 인터넷을 통해 모유를 사고 파는 거래를 하는 것이다. 젖이 남아도는 여성은 짜서 팔아 돈을 벌고, 모자라는 여성은 돈을 내고 산다. 모유의 상품화 문제는 둘째 치고라도 이렇게 마구잡이로 유통된 모유가 과연 안전할지 의문이다.
엄마 젖이 단백질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사실 덕분에 모유 수유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모든 산모에게서 아기가 배불리 먹을 만큼 모유가 충분히 나오진 않는다. 모유를 조금이라도 더 먹여보려고 인터넷 젖동냥으로 눈을 돌리는 엄마들의 마음은 십분 이해가 간다.
전문의들은 모유가 부족할 땐 병원 같은 믿을만한 기관에서 운영하는 모유은행을 이용하라고 권한다. 산모의 건강과 젖의 영양 상태를 검사하고 검증된 모유만을 기증받아 신선도가 유지되도록 얼음주머니 등으로 포장해 배달해주는 것이다. 2007년 국내 대학병원 중 처음으로 모유은행을 설립한 강동경희대병원에선 1년 미만의 건강한 수유 여성에게서 남는 모유를 기증 받아 저체중아, 조산아 등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고 있다. 산모의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모유은행은 출산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수요에 비해 모유은행이 턱없이 적다는 것. 배종우 강동경희대병원 모자보건센터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대학병원급에선 우리 병원이 유일하고, 몇몇 중소병원이 운영하던 모유은행은 최근 대부분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모유은행을 감독할 체계가 없다는 점도 자칫 허술한 관리로 이어질 우려를 낳는다. 배 센터장은 "모유은행이 이미 활성화한 미국과 캐나다에선 북미모유은행연합이 모유의 검사와 유통 과정 전반에 관한 기준을 만들어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며 "우리 병원의 모유은행 역시 현재 이 기준을 따르고 있지만 국내 현실을 반영한 제도 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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