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전투기 60대를 동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습해 집권당인 하마스를 상대로 한창 전쟁을 벌이던 2009년 1월16일. 가자지구 자발리아 시티에 있는 의사 이젤딘 아부엘아이시(58)씨 집에 갑자기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강렬한 섬광이 번쩍였다. 8남매가 사는 집에 이스라엘 군이 쏜 포탄이 딸들의 방에 떨어진 것이다. 인형 책 운동화 등이 널 부러진 방 곳곳에서 세 딸의 주검을 본 그는 "하느님, 그들이 우리 집을 폭격해 내 딸을 죽였어요. 우리가 뭘 어쨌길래?"라며 울부짖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출신 의사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병원에서 일하던 터라 충격은 더욱 컸다.
이성을 잃었을 법 했지만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떠올리거나 증오하지 않았다. 대신 중동 여성의 교육을 위한 재단(Daughters for Life)을 세우고, 딸의 죽음과 전쟁의 비극 등을 담은 책(I shall not hate)을 출간하며 인권 및 평화운동가로 활동했다. 이런 그의 결심과 행동은 평소 의료현장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고, 수시로 전쟁을 겪었던 경험에서 온 도덕적 신념이 바탕이 됐다.
최근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그는 2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딸들의 죽음이 평화로 가는 마지막 희생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며 "비극의 크기가 클수록 동기를 부여해 (평화에 대한) 내 신념도 더욱 확고하다"고 말했다.
아부엘아이시씨는 주로 상대의 거만함이나 무시 때문에 생기는 증오심은 본인을 위해서도 해롭다고 했다. "화가 나면 상대방에게 얘기해 고칠 수 있지만, 이보다 더한 증오는 상대를 거들떠보려 하지도 않아요. 증오해서 뭘 얻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증오는 스스로를 좀먹는 암이자 전염병입니다."
자신도 증오심을 갖지 않으려 애 썼다. "세 딸을 잃은 뒤 이스라엘의 장관, 관료, 지인 등을 통해 공식적인 사과를 받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어 결국 2010년 12월 변호사를 선임해 이스라엘 법원에 소송을 냈죠.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지만 낙관합니다. 안 되면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다른 평화적인 방법을 찾아볼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팔레스타인도 보복 대신에 미래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격화하는 한국 사회의 치유법을 묻자 "서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묻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상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2009년 남은 자녀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건너가 현재 토론토대 공중보건대학원 부교수로 강단에 서며 평화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0년엔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으며, 이번달엔 캐나다 국민들이 뽑은 '최고 이주자' 25명에 포함됐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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