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돈 풀기'로 근근이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는 글로벌 경제가 중대 기로를 맞았다. 미국과 일본이 조만간 돈 풀기를 중단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 돈을 풀어대도 문제지만 체력이 바닥난 세계경제에 유동성 공급이 중단될 경우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의 돈 풀기가 계속돼도, 끊겨도 걱정인 한국 경제는 한층 복잡한 심정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들어 미국의 채권지표물인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1.94%(22일)까지 급등했다. 이달 초만 해도 사상최저치인 1.6% 선에 머물던 금리는 조만간 2% 돌파도 시간문제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이는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 중단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양적완화의 주요 수단인 중앙은행의 채권매입이 줄어들면 채권수요가 감소해 가격이 떨어지는데(금리 상승), 이 같은 우려를 시장이 선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채권 금리가 오르면 가계지출과 기업투자가 모두 위축돼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미국이 다시 돈줄을 죄이는 순간, 신흥국 증시 등 해외로 퍼져나갔던 돈이 재조정되면서 우리나라의 주가, 환율 등은 큰 변동성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의 관심은 22일(현지시간) 미 의회에 출석하는 벤 버냉키 Fed 의장의 입에 쏠려 있다. 앞서 1, 2차 양적완화 종료 직후 경기가 다시 위축됐던 경험으로 볼 때 버냉키가 단정적으로 양적완화 종료 발언을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미세한 뉘앙스 차이로도 시장에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이다.
'아베노믹스'를 앞세운 일본의 돈 풀기 행진에도 갈수록 제동 요인이 커지고 있다. 수출 기업의 수익 증가와 증시 활황 등의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수입물가 급등과 국채금리 상승 등 만만찮은 부작용이 고개를 들고 있다.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마이너스에 머물던 일본의 수입물가 상승률은 올해 3월과 4월, 두 달 연속 10%를 넘었다. 원자력 발전 중단 이후 에너지 수입량이 급증한 일본에게 수입물가 급등은 경기회복세가 뒷받침 되지 않는 악성 인플레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또한 엔저 효과에 따른 기업들의 수익성 개선과 달리, 정작 민간 소득은 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개인소득 증가율은 2월과 3월 각각 0.1%, 0.0%에 그쳤으며, 현금소득은 아예 -0.9%, -0.3%로 뒷걸음쳤다. 이처럼 기업 이익 증가가 근로자 임금 인상으로 연결되지 않을 경우 내수 비중이 큰 일본의 소비도 늘어나기 어렵다.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국채금리 급등이다. 10년만기 국채 금리(22일 0.89%)는 불과 한 달 새 50% 이상 치솟았다. 아베노믹스로 인한 경기회복 기대감이 반영되고 연일 최고치를 경신 중인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쏠린 탓에 국채 인기가 떨어진 것이다.
미국처럼 채권금리 상승은 일본 경제에 치명적일 수 있다. 국채 대부분을 보유 중인 일본 시중은행들은 국채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도 6조6,000억엔(약 73조원)의 손해를 보는 구조여서 자칫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국가부채비율 약 230%로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 정부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 자칫 국가경제의 붕괴로까지 번질 위험도 제기된다.
이 같은 흐름을 바라보는 한국 경제의 속내는 복잡하다. 가뜩이나 선진국 양적완화가 초래한 엔저 현상과 과도한 채권투자금 유입으로 고민스런 상황에서 더 큰 충격을 감당해야 할 처지로 몰리고 있어서다.
미ㆍ일 경제와 연관성이 높은 우리에게 최선의 시나리오는 두 나라의 돈 풀기가 실물경제 회복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가운데 양적완화가 서서히 종료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실물경기 회복이 미약한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이 더 이상 부작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갑작스레 양적완화 정책의 흐름을 바꾸면 대규모 투자금 유출, 수출입 급변동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 세계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선진국 통화정책의 흐름에는 한국 경제에 대형 충격을 부를 변수가 적지 않다"며 "이에 대한 면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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