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이수영 OCI 회장 부부 등 재벌 총수 일가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발표를 접한 국세청 관계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명단 공개로 국민들의 관심이 국세청의 향후 조사일정에 쏠리고 있지만, 기대만큼 신속하게 탈세 여부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일단 이수영 회장 등이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를 불법증여 및 재산은닉 등의 수단으로 활용해 탈세를 했는지에 대해 정밀검토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당사자나 해당 기업의 해외계좌 개설 여부, 계좌의 성격, 계좌 개설 방식 및 사용 내역 등 국세청이 확보 가능한 자료를 토대로 탈세 조사에 착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언론 뉴스타파가 이날 공개한 자료에는 페이퍼컴퍼니 설립자의 실명과 보유지역, 설립시기만 담겨있을 뿐 계좌 내역 등 구체적인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 때문에 국세청은 우선 조세피난처에 계좌가 존재하는지 여부부터 밝혀내야 한다.
문제는 조세피난처에 계좌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탈세와 연결 짓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번에 공개된 인사들 및 기업에 대한 탈세 여부를 검증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공개된 자료가 너무 피상적인데다 해당 인사나 법인이 조사에 적극적으로 대비할 가능성이 커 탈세 입증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뉴스타파가 이날 공개한 재벌 총수와 법인을 모두 역외탈세 혐의로 처벌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김덕중 국세청장이 역외탈세 추적을 주요 과제로 선정한데다 국민들의 관심도 높은 만큼, 담당 직원들 입장에선 마냥 자료 부실 탓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국세청의 역외탈세 조사능력을 과시해야 하는 부담감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올해부터 해외보유계좌 신고 대상(내년 신고 분)이 기존 예금과 상장주식에서 채권ㆍ파생상품 등 모든 금융자산으로 확대되고, 미신고 금액이 50억원을 초과하면 위반자의 인적 사항 공개와 형사처벌이 가능해지는 등 관련 법이 강화되는 만큼 역외탈세가 어떻게 처벌되는지에 대한 확실한 본보기를 만들 필요성도 제기된다.
여기에 최근 미국, 영국, 호주 등의 세무당국과 역외탈세 관련 자료를 공유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명단 외에도 조사대상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세청이 미국 세무당국 등에서 넘겨받을 조세피난처 관련 자료는 400기가바이트로, 이날 뉴스타파가 공개한 명단의 원자료 260기가바이트보다 훨씬 더 많다. 갈수록 지능화하고 규모가 커지는 역외탈세와 국세청 간 대결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