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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와 마법의 검은 숲엔 두터운 어둠만이… 헨젤과 그레텔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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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와 마법의 검은 숲엔 두터운 어둠만이… 헨젤과 그레텔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입력
2013.05.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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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젤이 그레텔을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아이들은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걷고 이튿날도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걸었지만, 숲을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오누이는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땅에서 자라는 산딸기 몇 개밖에 먹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너무 지친 나머지 이제는 걸을 수도 없어 나무 아래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집을 떠난 후 셋째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걸었습니다. 하지만 자꾸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기만 했습니다…

((펭귄클래식코리아ㆍ2011) '헨젤과 그레텔' 중에서)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왔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13번 트랙. 오전 7시 55분, 날씨 맑음. 세상 좋아졌다. 긴장할 필요가 없다. 손바닥 위의 스마트폰엔 타야 할 열차의 번호와 환승 방법이 직관적인 그래픽으로 떠 있다. 대학생 배낭여행자 시절, 전화번호부 두께의 열차시각표 책을 들고 뛰어 다니며 손짓발짓 이 열차 맞냐고 묻던 기억이, 아슴아슴 떠오른다. 열차에 올랐다. 창 밖으로 녹색 패치워크 같은 오월의 초원이 흘러간다. 그냥 그걸 보러 간 것이었대도 만족할 풍경이다. 칼스루에에서 열차를 한 번 갈아타고 바덴-바덴에 도착하니 오전 9시 29분. 역전 주차장에서 예약해 둔 렌터카를 찾아 시동을 걸었다. 드디어 간다. 마법과 동화의 숲,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로.

영어로 '블랙 포레스트(black forest)'로 번역하는 슈바르츠발트는 독일 남서부의 수림 지대를 일컫는다. 길이 160㎞, 폭 50㎞ 규모의 광활한 숲이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모서리에 남북으로 뻗어 있다. 검은 숲(黑林)이라는 이름에 대한 궁금증은 숲에 한 발짝만 들어가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40~50m 높이의 아름드리 가문비나무와 전나무의 바늘잎은, 바닥에 떨어져야 할 빛을 공중에서 모두 거두어 깊고 무거운 그늘을 숲 속에 채워 놓는다. 기록에 따르면 이 숲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것은 2세기 로마의 군사들이다. 바덴-바덴 부근에서 울울한 숲의 기운에 눌린 카라칼라 황제는 이 숲을 '실바 니그라'라고 불렀단다. 라틴어로 역시 검은 숲이라는 뜻이다.

7유로 더 내고 내비게이션 달린 차를 빌렸다. 괜한 짓이었다. 독일어를 모르니 목적지를 입력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에라, 지도를 보고 찾아가기로 한다. 목적지는 검은 숲 한가운데 있는 트리베르크. 바덴-바덴 외곽 쿤첸바흐 마을부터 '슈바르츠발트 호흐슈트라세(검은 숲 고도(高道))'로 불리는 B500 도로를 타야 했다. 못 탔다. 실컷 헤매다 노이바이어라는 예쁜 마을에서 겨우 숲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근사한 화이트와인을 만든다는 포도밭을 지나자마자 길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숲이 시작됐다. 해발 고도는 아직 400m 남짓. 이 고도엔 침엽수뿐 아니라 고층 아파트 높이의 너도밤나무도 빽빽하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득한 높이의 검은 잎사귀 사이로 깨진 거울 파편 같은 하늘이 드문드문 보였다.

활엽수가 분포하는 중간 고도의 슈바르츠발트에서 길을 벗어나 숲 속으로 5분만 걸어 들어갈 수 있다면 용감하다고 자부해도 좋다. 아니면 빛과 어두움에 대한 감각이 무척 남다르거나. 아름드리 나무가 밀생하는 숲엔 어둠이 아래에서부터 차곡차곡 두텁게 고여 있었다. 2m가 채 안 되는 사람의 눈높이는 대낮에도 해가 떨어질 무렵의 밝기다. 팀 버튼의 영화 속인 듯한 그로테스크한 풍경 속을 걷다 으스스해져 곧 밖으로 나왔다. 볕이 닿지 않는 부엽토엔 양치 식물만 가득했다. 고사리 모양 식물의 키가 거의 무릎에 닿았다. 그림 형제의 책을 읽으며 왜 이렇게 어둑어둑한 동화를 썼을까 궁금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이곳 슈바르츠발트가 배경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을 가르는 라인강이 서쪽 경계를 이루고 스위스의 알프스 고산지대가 남쪽으로 닿는 슈바르츠발트는 독일에서 가장 외진 땅이다. 게다가 산과 숲이 깊어서 이 지방엔 중세 시대 가난한 농민과 산적들, 세상을 등진 사람만 살았다. 이 숲에서 숱한 이야기가 태어난 건 그래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두렵지만 호기심이 솟는 마법사와 요정들이 슈바르츠발트에 산다는 얘기를 사람들은 쉽게 믿었다. 17세기 탄광 개발로 훼손되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대량 벌목이 이뤄졌지만 숲은 여전히 깊다. 아이들을 오븐에 넣을 궁리를 하는 마녀도,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일하는 일곱 난쟁이도, 슈바르츠발트의 어둑한 산 속 어딘가엔 아직도 정말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슈바르츠발트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바덴-바덴부터 프로이덴슈타트까지 목가적인 풍경이 이어지는 북부, 실타흐와 트리베리크, 푸르트방겐 등 뻐꾸기 시계로 장식된 동화 같은 마을들이 있는 중부, 알프스 산맥의 북쪽 자락으로 산과 호수의 경치가 빼어난 남부다. 관광 인프라가 훌륭하다. '헨젤과 그레텔'의 인적 없는 어두운 숲만 기대했다면 마을마다 가득한 여행객에 실망할 수 獵? 그래서 이곳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트레킹이다. 짧게는 30분 코스부터 길게는 포르츠하임에서 스위스 바젤에 이르는 280㎞ 코스까지, 수백 가지 걷는 길이 거미줄처럼 검은 숲을 뒤덮고 있다. 길은 안전하고 사람들은 친절하다. 철도 시스템이 부럽도록 근사해 구석구석을 배낭만 메고도 갈 수 있다.

느릿느릿 운전하고 걷고 기웃거리다 저녁에 트리베르크에 도착했다. 세계적인 초콜릿 체리 케이크와 소시지의 고장이다. 아쉽게도 그걸 오래 즐길 시간은 없다. 프로이덴슈타트까지 가서 차를 반납하고 슈투트가르트로 돌아가는 마지막 열차를 타야 했다. 또 길을 헤맸다간 열차를 놓쳐버릴 시간. 주민에게 내비게이션 쓰는 법을 물었다. 독일 여행의 팁 하나, 독일인은 영어를 잘 한다는 통념에서 슈바르츠발트 지역은 제외다. '제가 지금 좀 급해서요… 이거 쓰는 법 좀 가르쳐 주세요.' 어설픈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급한 맘에 손짓발짓에 한국어를 섞어 물어보니 그제야 알아듣는다. 역시 진심이 통하는 법인가보다. 손짓발짓에 섞인 그들의 독일어가 이렇게 들렸다. '그래 동양 애가 용케도 여기까지 왔구나. 다음엔 꼭 하룻밤 자고 가렴.'

바덴-뷔르템베르크(독일)=글ㆍ사진

여행수첩

●슈바르츠발트는 프라이부르크, 프로이덴슈타트, 바덴-바덴 등 비교적 규모가 큰 도시뿐 아니라 작은 마을까지 철도망이 촘촘히 깔려 있어 접근하기 어렵지 않다. 독일 철도 패스를 구입하면 1개월 이내에 3~10일 동안 철도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3일 247유로~10일 460유로(성인 1등석 기준). 레일유럽 www.raileurope.co.kr ●자동차를 이용하면 구불구불한 언덕과 깊숙한 계곡까지 손쉽게 둘러볼 수 있다. 온천, 전경, 와인 등을 테마로 한 드라이브 코스가 있다. 예약 필수. 신용카드로 보증금을 결제한 뒤 돌려받는다. 국제면허증은 필요 없다. 유럽카(www.europcar.com) 식스트(www.sixt.com) 허츠(www.hertz.com) ●지역 내 관광안내소에서 슈바르츠발트 카드를 구입할 수 있다. 150여곳의 입장료와 액티비티 이용료가 포함돼 있다. 성인 32유로, 어린이 21유로. 호텔에서 만들어주는 '슈바르츠발트-게스테카르테'로도 무료 입장 또는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www.blackforest-tourism.com 독일관광청 한국사무소 (02)773-6430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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